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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현대적 해석 소명과 사명의 순환루프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현대적 해석
소명과 사명의 순환루프
“어느 날 밤, 악마가 찾아와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는 절망하며 악마를 저주하겠는가? 아니면 이를 신이 내리신 축복으로 받아들이겠는가?”
니체 영원회귀를 묻는 질문이다. 질문의 목적은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재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 다음 생엔 잘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회귀 앞에서 절망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지금 현재의 이 삶이 “다시 반복되어도 좋아! 나는 이 순간을 다시 선택하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진정으로 사랑(아모르 파티)하는 사람이다.
내가 진심을 다해 선택한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그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장치를 통해 “영원히 반복되어도 후회 없을 만큼, 지금 이 순간을 주체적으로 뜨겁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원회귀는 “내 인생이 오늘 상영되는 영화처럼 무한 상영된다고 했을 때, 당당하게 ‘상영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삶을 살라”는 명령이다.
스티브 잡스는 내일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할 때 오늘의 삶을 그대로 지속할 것인가?라는 보다 현실적 질문으로 니체의 영원회귀를 순화시켜 질문을 던졌다. 삶의 가장 생산적인 상황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도출된다는 하이데거의 생각을 니체의 영원회귀에 결합한 것이다. 결국 이 질문의 답변이 “아니요”면 지금 하는 일들을 바꾸고 “예”라는 답이 나오면 지속해 근력을 쌓았다. 스티브 잡스는 이처럼 죽음에 직면한 영원회귀의 질문으로 애플이라는 회사를 만들어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현실적 삶의 최적화 함수로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삶의 개입이 끝나는 마지막 죽는 순간 후회 없이 자신이 존재목적으로 약속한 삶을 완성해 유산으로 남기고 죽는 삶을 선호할 것이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신뢰의 근원은 이 사람이 죽는 순간에 정산할 마지막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의 문제다. 지금 사는 모습을 추정할 때 약속의 존재자체를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가 일상에서 하는 소소한 약속들은 모두 근거를 상실한다. 결국 살기 위해 남의 것을 차용할 때 필요한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팍팍한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삶의 개입이 끝나는 죽음 이후에는 이런 마지막 날의 삶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 사후에도 영원회귀가 지속되는 삶을 지속한다.
살아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사람들은 결국 이상적인 마지막 날의 삶을 결실로 볼 때 이 결실에서 채취한 밀알을 현재로 가져와 매일 매일 가꾸어 결국은 마지막 날에 결실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는 삶을 산다. 매일은 마지막 날에서 채취한 밀알을 지금으로 가져오는 행동과 이 밀알을 현재의 삶에 심어서 과일로 길러내는 행동의 무한 반복이다. 밀알을 가져오는 행동을 소명(Calling)이라고 부르고 이 소명으로 받은 밀알을 식재해서 길러내는 지난한 과정을 사명(Mission)이라고 부른다. 결국 매일을 통해 삶은 소명과 사명의 무한 반복을 통해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근력의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실제 조직이나 사회의 변혁을 마련한 리더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차원의 삶의 성공함수를 가진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 삶의 성공을 설명하는 성공함수의 최종 종속변수를 목표달성으로 착각한다. 목표달성이 되면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 다음 목표도 순조롭게 달성시킬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렇게 단기적 목표의 반복적 달성을 통해 성과를 내면 적어도 생존이 보장되고 생존이 반복적으로 보장되면 결국은 번성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순진한 가정이다. 이런 삶은 쳇바퀴를 반복적으로 돌리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벗어나지 못한다.
니체의 영원회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삶의 개입이 끝나는 정산의 순간에 달성해야 할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에서 밀알을 채취해 현재의 삶으로 가져오는 Calling과 이 씨앗을 삶의 토양에서 식재해 과일을 길러내는 Mission을 매일 반복해 매일 매일 자그마한 차이를 만드는 삶을 지속한다. 죽는 순간까지 소명과 사명의 삶을 반복할 수 있는 사람만 존재목적에 약속한 상태를 정산해 유산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자신이 약속한 존재목적을 정산하고 유산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은 살아 있는 나침반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의 유혹과 어려움을 당해도 자신이 가야할 경로로부터 탈로하지 않는 삶을 산다. 이 사람에게는 존재목적이 나침반의 북극을 형성하고 밀알을 채취해 척박한 땅에 심어 과일을 산출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에 대한 사랑인 긍휼이 나침반의 남극을 형성한다. 나침반 남극과 북극 긴장은 나침반을 끊임없이 떨리게 만든다. 떨리지 않는 나침반은 죽은 나침반이다.
지남철(나침반)
민영규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