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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Righteousness), 정의(Justice), 공정성(Fairness)의 차이 지속가능성의 빙산모형

Jul 4, 2026 ·4분 ·jkyoon · 1
공의(Righteousness), 정의(Justice), 공정성(Fairness)의 차이
지속가능성의 빙산모형
오는 5월 14일 <사회평론 아카데미>에서 발간될 예정인 저서 『공의로운 정의(Righteous Justice): 한국 사회 지속가능할까?』는 벼랑 끝에 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진단하며, 그 해답으로 ‘정의의 빙산 모델’을 제시한다.
우리가 흔히 정의(Justice)라고 부르며 목소리를 높이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보상의 형평성, 즉 분배의 규칙은 사실 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의 일부분인 공정성(Fairness)에 불과하다. 정작 이 거대한 빙산을 침몰하지 않게 수면 위로 떠받치고 있는 실체는 물속에 깊게 잠겨 보이지 않는 하부 구조, 즉 공의(Righteousness)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눈에 보이는 빙산의 윗동이 누르는 중력의 힘을 눈에 보이지 않는 빙산 밑동의 부력이 떠 받쳐줄 수 있는 지의 문제다.
정의에 대해 논의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공정성(Fairness)를 보완하는 절차, 제도, 법에 치중하고 공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무시해왔다. 정의 문제가 시끄러움만 더할 뿐 영원히 해결되지 못한 이유다. 정의를 지속가능한 사회의 원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는 것 취급했던 공의에 명확한 이름을 붙이고 이를 사회 전반의 운영 동력(Driver)으로 삼는 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 공의라는 보이지 않는 빙산의 밑동이 튼튼해질 때 비로소 그 결과물로서 공정성과 정의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게 되며,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도달해야 할 지속가능성의 진정한 비밀이다.
이러한 공의를 구성하는 핵심 골격은 존재목적, 긍휼, 그리고 코즈(Cause)라는 세 가지 요소의 유기적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존재목적은 우리 공동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자 약속이다. 둘째, 긍휼(Compassion)은 단순히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감정을 넘어,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존재론적 아픔으로 받아들여 그를 다시 공동체의 주인이자 동역자로 세우려는 뜨거운 사랑과 실천적 의지를 의미한다. 셋째, 코즈(Cause)는 이러한 목적과 긍휼을 현실의 제도와 문화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더 높고 평평한 협업의 운동장을 설계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명분이자 행동 지침이다. 공의를 구성하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드라이버로 제시되고 이것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강력한 사회적 부력을 형성할 때 비로소 공동체의 근간을 지탱하는 살아있는 힘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정의 이론을 기초한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 마이클 샌달의 공동체 정의론, 예수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행위는 공정성이 아닌 공의의 문제를 통해 어떻게 정의의 빙산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존 롤스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가상적 상황을 통해, 합리적인 개인이 자신의 미래 지위를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하게 될 시스템의 공정성에 주목하였다. 그는 자신이 사회적 최약자가 될 가능성을 고려할 때, 그 최약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사회 구조를 설계하는 ‘차등의 원칙’에 합의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이성적 추론을 통해 도출된 공정의 원칙이지만, 그 기저에는 가장 고통받는 자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공동체적 공의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마이클 샌달 교수도 정의가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에 기반을 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문제를 극복하고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정의론을 주장하고 있다.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정의란 본인이 주장하는 공의(Righteouness)라는 빙산의 밑동을 의미한다. 샌달 교수는 빙산모형을 상정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정의 문제도 공의의 상실에서 원인인 열쇠를 찾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예수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라는 수량적 효율성과 집단의 안전이라는 경제적 논리를 넘어, 길을 잃고 낭떠러지에 선 ‘한 마리의 양’에 주목하였다. 예수의 이 파격적인 행보는 단순한 자선을 넘어, 소외된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그 아픔에 깊이 공명하여 다시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복원시키려는 긍휼의 극치를 보여준다.
롤스가 이성적 설계를 통해 공정성이라는 중력을 견뎌낼 견고한 공의 시스템의 기초를 닦았다면, 샌달은 공의를 지향하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예수는 뜨거운 긍휼을 통해 공의라는 부력을 만들어내어 정의가 비로소 메마르지 않고 흐를 수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결국 리더가 공동체의 아픔을 공의로운 긍휼로 마주할 때 잠들어 있던 존재목적은 비로소 각성되며, 그 목적에서 채취한 변화의 씨앗은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코즈로 성장하여 역사를 움직이는 드라이버가 된다. 긍휼을 통해 목적이 살아나고, 그 목적이 코즈라는 실천을 통해 현실의 지형을 바꿀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는 마르지 않는 공의의 샘물이 솟구치게 된다.
공의에서 시작한 샘물이 모여 정의의 강물을 이루고, 세상에서 가장 낮고 평평한 곳인 바다로 흘러가 모든 차별과 소외를 덮으며 공동체 전체를 품어 안는 모습, 그것을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내는 것이야말로 공의로운 정의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이다.
정의의 빙산모형을 제대로 이해하는 정책자들만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리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니라(아모스 5: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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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