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삼성전자노조의 총파업 우리 모두의 문제다
삼성전자노조의 총파업
우리 모두의 문제다
2026년 5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을 포함한 공동투쟁본부는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와 상한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했고, 이에 삼성전자는 공급망 차질과 국가 경제 타격을 우려하며 가처분 신청 및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노조는 93.1%의 찬성률로 쟁의권을 확보하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는 등 공세를 높이고 있으나, 파업 불참자에 대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논란과 부문 간 보상 격차에 따른 ‘노노(勞勞) 갈등’, 그리고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정부, 정치권, 여론의 부정적 시각이 맞물리며 노사 간 팽팽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가?
표면상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하이닉스처럼 성과급을 투명하게 배분해 달라는 공정성의 문제로 보이지만 모든 이슈의 마지막이 공정성이라는 이슈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지 공정성 이슈가 해결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전삼노가 제기하는 문제에서 하이닉스가 역할 모형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으나 하이닉스가 이런 공정성 이슈를 투명하게 해결한 모범적 케이스는 아니다. 하이닉스도 운좋게 이번에는 문제를 피해갔지만 하이닉스에서도 언제든 같은 문제가 발화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운좋게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려 도파민 폭탄을 맞은 대한민국 대기업에서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문제다.
이번 달에 출간되는 본인의 저서 <공의로운 정의 (사회평론출판사)>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기되는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제기되는 원인과 이에 대한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요구되는 처방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정성 이슈는 기업, 공동체, 개인이 미래를 담고 있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다. 미래의 지속가능성이 해결되지 못하면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이슈는 언제든지 다시 발화된다.
책이 공정성 문제를 근원적 수준에서 풀기 위해 제안하는 모형이 빙산모형이다. 세상의 모든 이슈는 눈에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이는 부분은 빙산의 윗동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빙산의 아랫동이다. 빙산이 지속가능하게 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작동한 부력이 보이는 부분이 제기하는 중력을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Justice)에 관한 이슈도 마찬가지다. 정의를 구성하는 빙산은 제도적이고 법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공정성(Fairness)라는 빙산의 뜬 부분과 정의 빙산의 밑동에 해당하는 본인이 명목적으로 공의(Righteousness)라고 명명한 부분으로 구성된다. 공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모든 가치를 총칭한다.
정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지금처럼 정의에 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이는 부분인 공정성을 이슈로 제기하고 이것을 보이는 방식인 제도와 법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시도가 많아질수록 정의 빙산의 윗동이 누르는 중력은 더 커지는 반면 빙산 밑동의 부력은 점점 사라져 결국 빙산은 침몰할 운명이다. 대분분 공정성 이슈는 보이지 않는 엉뚱한 곳에서 뺨을 맞고 엉뚱한 보이는 곳에 화풀이 하는 형국이다. 이런 식의 공정성을 앞세운 화풀이는 문제만 키울 뿐이다. 지금 삼성반도체에서 이슈로 제기되는 공정성의 문제도 돌봐야 하지만 보다 근원적 정의에 대한 처방이 없다면 언제든지 문제는 다시 불거진다.
윗동의 제도적 법적 처방도 필요하지만 이 기회에 지속가능성의 비밀을 품고 있는 빙산의 아랫동을 더 단단하게 가동시키고 아랫동에 해당되는 것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것의 구성요소를 들춰내 눈에 보이는 드라이브(끌개)로 만들고 이 드라이브를 실현해 성취한 도전적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시스템을 강화제(밀개)로 작동시킬 수 있는 근원적 변화가 요구된다. 역설적이지만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이슈는 정의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정의에 대한 고질적 문제는 빙산 밑동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가라 앉고 있음에도 이 불안을 눈억 보이는 빙산의 윗동에서 제도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시도 때문에 발생한다.
나는 삼성반도체의 문제도 공정한 배분의 이슈는 빙산의 드러난 부분이고 삼성반도체가 돌보지 못한 것은 빙산의 밑동에 해당되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공의로운 문화의 상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진단한다. 하이닉스가 운 좋게 이번에는 문제를 피해간 것처럼 보이지만 하이닉스도 삼성반도체와 똑 같은 문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빙산의 밑동에 해당하는 공의로운 문화의 상실은 대한민국 모든 대기업이 겪고 있는 공동의 이슈다. 이슈가 불거지는 기업은 복권당첨금처럼 천문학적 영업이익이 삼성반도체와 하이닉스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들도 운좋게 영업이익 폭탄을 맞으면 비슷한 이슈를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대기업도 홈페이지를 보면 마치 빙산의 밑동인 고유한 철학과 문화적 역량을 가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이것의 부재에 대한 포장일 뿐이다. 고유한 철학과 문화적 역량이 없어 미래의 지속가능성이 안보이는데 복권당첨금처럼 도파민 폭발이 발생한다면 모두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고 결국 모두 같은 문제를 경험할 것이다. 철학과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는 큰 복권당첨금이 생기면 모두 공정성을 앞세워 계산기를 두드린다. 돈 앞에 장사가 없음을 실감한다.
삼성반도체의 문제는 회사가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전략을 단기적 영업이익에 방점을 두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미래를 걸고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 문화와 철학의 끌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이건희 회장이 월급장이 천국에 대한 약속이 더 이상 끌개로 작용하지 않음에도 금전적 전략으로 구성원들을 회유했기 때문에 생긴 삼성반도체 HR의 실패다.
빙산의 밑동에 해당하는 지속가능성 가치를 향한 공의 끌개란 기업 HR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2년전 보고이지만 딜로이트 컨설팅이 2024년 대기업 MZ 세대 직장인들의 실태조사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한국 500명을 포함해 44개 국가의 22481명을 23년 말과 24년 초에 걸쳐서 조사했다.
이 조사에는 MZ 세대의 직업과 직장의 목적의식에 대한 만족도라는 지표가 나온다. 한국의 경우 직업에 대한 목적의식 만족도는 Z세대가 63%, 밀레니얼 세대가 76%로 만족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회사의 목적의식에 대한 만족도는 각각 50%와 47%로 급격하게 떨어진다. 글로벌은 Z세대가 71% M 세대가 72%로 격차가 많이 벌어진다.
이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세 석공의 이야기 속에 그 답이 담겨 있다.
세 명의 석공 이야기는 다 아는 이야기다. 한 석공은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고 생각하는 석공이다. 틈만 나면 일하기 싫어 도망 갈 궁리를 한다. 다른 석공은 생계 때문에 일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석공 만큼이나 일하기 싫지만 생계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마지막 석공은 공사장이 성전을 복원하는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은 석공이다. 성전이 복원되면 믿음을 잃었던 사람들이 다시 믿음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헌신해서 일한다.
이 세 석공의 이야기는 각자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 안에 내재화된 다른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이번 딜로이트 조사를 보면 Z세대 직장인의 경우 일하는 동기의 63%가 세 번째 석공의 내재적 동기로 채워져 있고 나머지 37%를 생계라는 외재적 동기와 습관이 만든 괸성으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M세대는 세 번째 석공의 마음이 좀 더 높아서 76% 정도다.
직장인들은 이해하겠지만 세 번째 석공의 마음이 사라지는 이유는 석공 개인의 철학과 사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회사 비즈니스가 성당을 복원하는 공사장이라는 장면을 제공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회사가 영업이익에 눈이 멀어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올려 여유가 생겼음에도 구성원에게 세 번째 석공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문화(성전)를 돌보지 않고 결국 폐허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셋째 석공의 마음으로 출근했던 사람들도 회사가 자신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의 동기를 실현할 수 있는 공의로운 지속가능성 운동장의 역할을 못한다면 점점 시작했을 때 초심으로 가졌던 마음을 잃는다.
세 번째 석공의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기업 비율은 어떤가? 언급했듯이 회사의 목적의식에 대한 만족도는 각각 50%와 47%다. 대한민국의 기업 중 적어도 세 번째 석공이 일할 수 있는 목적과 사명의 운동장을 제공해주는 비율이 절반 미만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70% 이상이다. 격차가 크다. 이런 차이가 기업의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상당히 크다. 특히 장기적 성과의 문제인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절대적이다.
회사에서 자신들이 반드시 비즈니스를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한 성전을 복원하는 스토리가 사라지면 회사의 운동장에 사명과 목적의 울타리가 사라진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던 사명과 목적의 울타리가 사라지면 종업원들은 두려움에 운동장 밑에 정치적 연줄을 엮어가며 각자도생을 위한 토굴을 파기 시작한다. 사명과 목적의 울타리가 사라진 회사는 알고 보면 운동장 밑에 이런 정치적 연줄로 파인 토굴 투성이다.
이들은 토굴을 파고 토굴이 무너지지 않게 연대하고 보수하는 일을 일이라고 주장해가며 틈날 때마다 공정성을 앞세워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런 일은 일이라기보다는 유사일(Psuedo work)이다. 고객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진실된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는 가짜 일을 부가가치라 속여가며 고객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회사가 지속가능할 수는 없다.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회사의 공식적 운동장에서 일하는 것과 토굴 속에서 일하는 것이 서로 디커플링 된 회사라는 것을 회사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도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자신들의 비즈니스가 고객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해가며 설탕 범벅인 감성 광고로 도배한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런 플라스틱 홈페지가 회사에 사명과 목적이 죽어 있음을 감추기 위한 고육지책의 거적이라는 것을 다 안다. 회사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거짓을 일삼는데 직원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해가며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거짓말을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뱀이 배가 너무 고프면 자신의 꼬리를 먹는 비현실적인 오로보러스 현상이 회사 안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회사가 목적과 사명이 오랫동안 죽어 있고 경제적 이득만을 위해 습관적으로 경영되면 직원들은 모두 첫째 석공과 둘째 석공으로 전락해서 토굴파기를 시작한다. 전통적으로 토굴파기는 조직행동론에서 Undermining이라는 개념으로 연구되고 있다.
토굴파기는 남들을 매장하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남을 깍아내리는 것에서 도파민을 얻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곳은 파놓은 토굴이 제 무덤이 된다. 자신의 죽을 자리를 미리 파 놓았다는 것을 깨달지만 깨달은 시점에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다. 뱀이 배가 고프면 자신의 꼬리를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우로보러스의 악순환 고리를 끊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삼성반도체 파업 공정한가?
모르겠다.
정의로운가?
아니다.
공의로운가?
절대 아니다.
한국의 대기업이 잃어버린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를 구성하는 존재 목적이 살아 있을 성전이다. 법과 제도로 지금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장 필요해 보이지만 이런 해결은 모두 정의 빙산의 중력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모두 지속가능성의 빙산을 침몰시키는 해법이다. 이번 기회에 영업이익 폭탄을 맞은 대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지지해주는 빙산의 밑동을 제대로 관리하고 키웠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구성원들도 잠시 계산기를 내려놓고 회사가 이런 지속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미래지향적 빙산의 밑동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채찍을 가해야 한다. 또한 각 회사는 섬처럼 보이지만 물 밑으로 들어가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삼성반도체와 하이닉스가 혼자 섬으로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이들을 버텨주게 만드는 하청의 하청이라는 대한민국 기업 생태계가 버티고 있었다. 진정 성과의 배분을 따진다면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대가 없이 땀을 흘리고 있는 타자들의 이슈도 포함해서 주장할 때 국민들도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고 손을 들어줄 것이다.
삼성반도체의 문제는 삼성반도체의 문제를 넘어 지속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잃은 대한민국이 직면한 우리 모두의 문제다. 삼성반도체 문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편들 문제는 더욱 아니다. 정치가들은 나라를 이렇게 만든 책임에서 절대로 면책될 수 없다. 자숙하고 조용히 있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