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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뷰카 세상에서 살아남기 번성근력(Antifragility)
초뷰카 세상에서 살아남기
번성근력(Antifragility)
변화와 위기가 상수인 초뷰카(HyperVUCA)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막 여행과 비슷하다. 사막에서 하룻밤만 지내고 나면 사막을 여행하기 위해 가지고 갔던 지도와 모든 준비물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밤이 되면 모래바람이 불어와 사막의 지형을 바꾸어 놓기 때문에 공들여 그렸던 지도가 무용지물이 된다. 지도가 없으니 보였던 세상이 사라지고 모두가 맨붕에 빠진다.
초뷰카 세상의 본질은 <길 잃음>이다. 모두가 길을 잃었음에도 자신만은 길을 잃지 않았다고 주장해가며 숨기고 살 뿐이지 길잃은 삶에 대한 불안은 초뷰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 기업, 리더의 현실이다. 길잃은 상황에서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이 느끼는 상태가 현기증과 아노미(Anomie)다. 현기증은 자신이 본 세상과 실제로 돌아가는 세상이 다름에도 자기가 본 세상을 믿고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었을 때 허공을 헤매며 넘어질 때 경험한다. 자신이 본 세상이 실제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음에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지도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노미에 시달린다.
아노미가 심각해지면 사는 것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줄을 놓고 무기력하게 드러눕는 현상이 생긴다. 삶의 기력을 잃고 드러누운 사람의 마지막 선택지가 아노미 자살이다. 최근 대한민국 직장인에 대한 고용보험 통계치를 보면 직장을 다니기는 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드러누움의 상태에 있는 경계성 질환자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매던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아노미 자살 1위국가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변화가 상수로 작용하고 불확실성이 극대화 되는 초뷰카 시대에도 살아남을 뿐 아니라 번성을 구가하는 리더와 기업들이 있다. 안티프래질리티라는 목적과 연동된 근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심 탈레브(Nassim Taleb)가 처음 제시한 안티프래질러티(Antifragility) 개념은 회복탄력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회복탄력성이 외부의 충격을 버텨내고 원래 상태로 복원되는 능력이라면, 안티프래질러티는 충격을 통해 더 강해지고 존재목적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한 발 더 공진화하는 번성근력이다. 인티프래질리티는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근력이다. 안티프래질리티는 회복탄력성과는 반대로 처음 일어선 시점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사부작 사부작 근력을 축적해 목적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삶을 의미하는 우상향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의 기반이다.
안티프래질러티은 존재목적에 정렬된 번성 근력을 의미한다. 안티프래질러티의 근력을 개발하는 전략은 본인의 저서『#급진거북이(#잉걸북스 2024)』에서 자세히 설파되어 있다. 급진거북이는 안티프래질리티 근력 의 전도사다. 차이와 반복을 통해 자신이 설정한 존재목적이라는 방향과 정렬된 거북이의 근력이 안티프래질러티다. 급진거북이는 사악하게 이기주의적으로 살지 않아도 이기주의자의 부분최적화 전략에 대응한 전체 최적화 전략으로 더 나은 삶을 근력을 만드는 Outsmart 전략과 쓰려졌을 때 일어서고 또 일어서야 하는 일어섬의 Outlast 전략을 설파한다. 급진거북이는 눈 먼 골리앗처럼 방향성을 잃은 경우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강해질수록 더 위험해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안티프래질러티는 존재목적이라는 힘줄 위에서만 작동하는 다윗의 근력이다. 회복탄력성이 작동했던 시기는 변화가 없는 세상이다. 지금처럼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 과거의 근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근력을 찬양한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동이다.
안티프래질러티 근력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안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하게 넘어져 에너지를 저축하고 대신 넘어졌을 때 반드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를 찾아 일어서는데 아낀 에너지를 사용한다. 몸이 무너졌을 때, 마음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마음이 무너졌을 때 정신이 마음과 몸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일어서야 하는 이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티프래질러티는 목적을 가지고 일어서는 행동을 통해 길러진다. 우리를 넘어뜨리는 힘은 다양하고 통제할 수 없지만, 넘어졌을 때 이유를 가지고 제대로 일어나게 하는 것은 자신이 통제하는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의 근력이다. 목적에 연동된 근력이 조금씩 차이를 가지며 축적되는 상태가 안티프래질러티다. 차이와 반복의 철학적 의미가 여기서 실천적 형태로 구현된다.
우리가 옳은 일에 대해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도 안티프래질리티라는 번성 근력이 있기 때문이다. 안티프래질리티가 없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는 것은 심각한 만용에 불과하다. 당랑거철이라는 고사성어가 경고하듯 사마귀가 거대한 마차의 바퀴에 대항하는 모습이다. 결과는 무모한 죽음이다. 리더가 자신이 책임지어야 할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꼬리 자르기에 여념이 없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는 것은 아픔을 감내할 용기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용기가 없는 이유는 당장 해결해야 할 아픔을 더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안티프래질리티 근력이 없기 때문이다. 안티프래질리티라는 번성 근력이 충분하다면 누구든 리스크가 있음에도 잘못에 대항에 일어설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신이 있어서 우리에게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때 이전 생에서 얻은 한 가지만 다시 가져올 수 있다고 허락한다면 본인은 돈, 명예, 권력을 포기하고 안티프래질리티 근력을 선택할 것이다. 안티프래질리티의 근력만이 초뷰카 혼돈이 넘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아무 것이 없어도 유동성을 창출해 다시 유산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담보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