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대한민국 청년들이 아프다. 고기능 우울증
대한민국 청년들이 아프다.
고기능 우울증
최근 우리 사회 청년들 사이에서 ‘고기능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이 소리 없이 번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능한 직장인이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인이지만, 퇴근 후 현관문을 닫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과 아노미(Anomie)에 빠져드는 현상이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지속성 우울장애(Persistent Depressive Disorder, PDD) 또는 감정저하증(Dysthymia)의 한 형태다. DSM-5 기준에서 이 진단은 최소 2년간 우울 기분이 지속되면서도 일상적 기능이 상당 수준 유지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고기능 우울증이 우울증과 달리 무서운 점은 역설적으로 고통이 기능적 붕괴라는 가시적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기능 우울증을 가진 청년은 학점을 유지하고, 직장에 출근하며, 소셜미디어에 정돈된 일상을 게시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혼자가 되는 순간 극단적 무력감에 시달린다. 빙산의 수면 아래에는 만성적 공허감, 삶에 대한 낮은 기저 기쁨, 항구적인 피로감, 자기 가치의 침식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시대는 초뷰카 시대다. 초뷰카 시대(Hyper VUCA Era)는 아날로그 플랫폼과 디지털 플랫폼이 서로 겉돌며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애매성(Ambiguity)을 키우고 이들 요소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Perfect Storm을 만드는 상태다. 초뷰카 상황은 매일 저녁 모래 바람이 불어와 아침에 일어나면 지형이 바뀌어 있는 사막여행에 비유된다. 우리 모두가 길을 잃는다. 사막 여행에서 길을 잃었음에도 길을 잃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가고 있는 셈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동료이자 친구도 길 잃음을 모르고 가고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길 잃은 사람들과 어울려 습관적으로 길을 가다 보면 어느 날 기력이 심각하게 소진되고 더 이상 침대에서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한다. 고기능 우울증이다.
고기능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이끌던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잘못된 긍정심리학 개념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긍정심리학을 필두로 회복탄력성이란 개념이 유행하던 시대는 질서가 상수이자 어느 정도 노력하면 누구나 성취를 거두던 시대였다. 성취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대의 루저였다. 넘어진 사람들에게 회복탄력성이라는 이념이 강제로 주입되었다. 이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넘어졌을 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근력인 회복탄력성을 답으로 믿었다. 회복탄력성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죄인으로 취급 받았다. 회복탄력성의 근력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도 루저로 찍히기 싫어 마치 회복탄력성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삶을 살았다. 오랫동안 의미없는 연기자의 삶이 고기능 우울증을 선사했다. 경기가 장기침체로 꺽이고 설상가상으로 외부로의 변화는 폭풍처럼 밀려오는 초뷰카 시대, 문제는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이들에게 회복탄력성을 앞세운 과거로의 ‘회복’이라는 주문은 문졔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변화가 상수인 초뷰카 시대임에도 청년들은 ‘회복탄력성’을 발휘해 사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고기능성 출력을 발휘하며 어떻게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 애쓴다. 회복탄력성은 외부 충격을 버텨내고 ‘복원’하는 능력이지 내재적 근력이 아니다.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회복탄력성은 오히려 스스로 무덤을 판다. 방향성을 상실한 채 회복탄력성만 강해지는 것은 눈먼 골리앗처럼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고기능 우울증의 핵심은 ‘존재 목적’의 부재에 있다. 이미 길을 잃은 사회적 기준에 맞춰 성실히 살아가며 서로가 ‘길 잃음’을 숨기고 살 뿐, 삶의 근원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심각한 현기증과 아노미를 경험한다. 자신이 믿었던 세상과 실제 세상의 괴리가 비현실적으로 커질 때, 그리고 그 괴리를 메울 ‘의미 있는 지도’를 만들지 못할 때 무력감은 시작된다. SNS에 고기능의 삶을 연출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았음을 친구와 동료와 사회에 보고하지만 보고가 끝날 때마다 사막에서 탄산수를 마신후 느끼는 갈증만 심해진다.
“살아남았으나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는 상태”, 이것이 바로 고기능 우울증의 민낯이다. 최근 대기업에 대한 고용보험원 통계를 보면 몸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이미 드러누워 버린 경계성 질환자가 급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기능 우울증이 무서운 점은 당장 붕괴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사는 것이 지독히 의미없다는 것을 촉발하는 각성사건을 경험하면 지금까지 잘 버텨왔어도 결국은 한순간에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 마지막 종착지는 아노미 자살이다.
안티프래질리티(Antifragility)의 근력
고기능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아닌 안티프래질리티(Antifragility), 즉 ‘번성근력’이 요구된다. 나심 탈레브가 제시한 번성근력은 고통을 직면한 후 오히려 더 강해지는 근력을 의미한다. 번성근력은 존재 목적과 정렬되어 형성된 근력으로 지속가능성과 미래를 향해 한 발 더 진화하는 탄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안티프래질리티는 단순히 외상 후 성장(PTG)을 넘어, 외상 후 번성(Post-Traumatic Strategic Growth, PDSG)을 만들어낸다. 안티프래질한 사람은 넘어졌을 때 ‘왜 일어서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만의 존재 목적을 찾아서 일어서는 사람이 축적한 근력이다. 몸이 무너졌을 때 마음이 몸을 일으키고, 마음이 무너졌을 때 정신이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자신의 존재 목적에 대한 믿음의 근력에서 나온다.
고기능 우울증은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방향타 없는 항해 속에서 영혼이 지쳐버린 결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회복탄력성이 아니라, 시련을 연료 삼아 미래로 약속했던 목적지로 나아가는 안티프래질리티라는 번성근력이다.
번성근력은 사악한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고도 존재목적을 중심으로 전체 최적화를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드는 ‘Outsmart’ 전략과,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Outlast’ 전략의 핵심원리를 담은 <급진거북이> 전략을 통해 축적된다.
자신의 존재 목적과 정렬된 번성 근력을 기를 때, 우리는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고갈되는 혼돈 속에서도 유동성을 창출하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된다.
===========================
고기능 우울증 자가 진단 (Yes/No)
===========================
[사회적 가면] 직장이나 학교 등 외부에서는 맡은 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며 활기찬 모습을 보이지만, 귀가 후 현관문을 닫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항구적 피로] 주말이나 휴식 시간에 충분히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근원적인 기쁨이 느껴지지 않고 만성적인 공허함과 피로감이 지속된다.
[의미의 부재]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취나 정돈된 일상을 SNS 등에 공유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왜 살아야 하는지’ 혹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존재 목적을 잃어버렸다고 느낀다.
[회복의 연기]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마음을 추스르기보다, 타인에게 ‘낙오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 괜찮은 척 연기하며 억지로 회복탄력성을 쥐어짜 내고 있다.
[신체와 마음의 분절] 몸은 사회적 요구에 맞춰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더 이상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든 ‘심리적 번아웃’ 상태를 자주 경험한다.
적어도 3항목에 예를 답했다면 고기능 우울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