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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상황과 가정의 울타리 사이 심곡에 서서 던진 질문: 어른답게 사는 삶이란?

Jul 4, 2026 ·5분 ·jkyoon · 1
한계 상황과 가정의 울타리 사이 심곡에 서서 던진 질문:
어른답게 사는 삶이란?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인위적으로 지어 올린 안전한 가정(Assumption)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간다. 마치 깊은 산속 오두막에 갇힌 사람이 그 오두막의 천정을 우주 전체이자 유일한 하늘로 믿고 사는 것과 같다. 이 오두막의 천정은 실상 허구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그것을 온전한 진실로 믿고 의존하는 순간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실체가 된다. 사회가 제공한 제도, 개인이 구축한 안락한 루틴, 그리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보편적인 믿음은 인간을 불안으로부터 보호하는 따스한 요람이다.
실존철학의 기초를 세운 카를 야스퍼스는 한계상황(Grenzsituation)이라는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가정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하늘이라고 믿었던 오두막의 천정이 거대한 폭풍우에 산산조각 나며 날아가는 순간을 의미한다. 죽음, 고통, 죄, 투쟁이라는 한계상황은 인간의 힘으로 결코 피할 수 없고 변경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벽이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이 벽이 갑작스럽게 눈앞을 가로막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믿어왔던 하늘이 가짜였음을 깨닫고 벌거벗은 단독자로서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다.
오두막의 안락한 가정과 한계상황의 처절한 진실 사이에는 인간이 쉽게 건널 수 없는 깊고 거대한 계곡이 존재한다.
평범한 대중은 한계상황이라는 벼랑 끝에 서면 각성하기보다 공포에 질려 눈을 감고, 다시 더 견고한 오두막을 지어 숨어버리는 편을 택한다. 반면 야스퍼스식의 영웅적 도약은 매일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에게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지속 불가능한 요구로 다가온다. 극단적 한계 상황과 일상적 가정의 울타리 사이에 놓인 계곡 위에 자신만의 단단한 다리를 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바로 삶의 실존적 삶을 추구하는 현자와 어리석은 자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 된다. 실존적 현자는 한계상황의 폭풍 속에서 영원히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허구적인 오두막 속에 평생 갇혀 잠들 수도 없음을 안다. 이들은 두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거부하는 대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지평을 넓혀가는 유기적인 통로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이 통로를 개척하는 방식에 대해 최근의 뇌과학에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미네르바 대학의 신경학자 다니엘 레비틴의 뇌의 나이테 모형이다.
레비틴은 이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만드는 실천적 대안은 뇌에 ‘나이테’를 새겨가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각성사건’과 그것이 삶의 루틴으로 자리 잡기까지 견뎌내야 하는 ‘고난사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물리적인 구조를 변화시킨다. 각성사건은 기존의 가정의 울타리를 초월하여 새로운 울타리의 존재를 인지하는 사건이고, 고난사건은 이 울타리를 견고하게 울타리로 만드는 사건이다. 인간은 삶의 개입이 끝나는 죽음의 순간까지 신경가소성의 원리를 통해 전전두엽에 N개의 울타리를 만들가며 한계상황의 위험을 분산시킨다.
익숙한 오두막을 깨고 더 넓은 가정을 선택하는 각성의 순간,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 작동하며 새로운 신경 회로가 개척된다. 그러나 도약만으로는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선택을 내 삶의 인프라와 제도로 안착시키는 과정, 즉 고난을 견디며 루틴을 반복하는 수행을 거쳐야만 신경세포 주위로 미엘린(Myelin)이라는 절연 물질이 두껍게 쌓인다. 이 뇌과학적 목질화 과정이 바로 뇌에 단단한 나이테를 한 줄씩 새겨넣는 근력의 본질이다. 하나의 나이테가 완성되면 인간은 더 성숙해지고, 그 성숙을 바탕으로 다시 기존의 틀을 깨고 나가 더 넓은 나이테를 두른다. 한개의 울타리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지만 N개의 나이테로 확장하는 과정은 번성근력(Antifragility)를 상징한다. 삶에서 나이테가 하나 밖에 없었다는 것은 회복탄력성의 근력을 극복할 수 있는 안티프래질리티의 근력을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전전두엽에 세겨진 나이테의 숫자가 회복탄력성을 극복한 안티프래질리티의 강도를 설명하는 척도다. 나이테의 숫자가 많을수록 죽을 때까지 뇌가소성의 원리를 제대로 실천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다. 나이테 모형은 뇌 신경학적 선순환은 한계상황의 충격을 완충하고 일상의 가정을 확장하는 가장 현실적인 실존적 삶의 양식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성장을 멈추고 마침내 삶의 개입이 완전히 끝나는 죽음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주머니 속 독약의 무게처럼 숨이 막히던 죽을 뻔한 한계상황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렸고, 그 선택을 통해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 냈는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던 고통이라는 한계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떤 결단으로 그 고통을 내 영혼의 나이테로 소화하며 초월했는가?
비겁한 침묵과 방관이라는 죄의 한계상황 앞에서 내 양심은 어떤 선택을 향해 움직였고 어떻게 그 책임을 짊어지며 초월했는가?
마지막으로 삶을 송두리째 흔들던 극단적 갈등과 투쟁의 상황 속에서 나의 선택은 무엇이었으며, 그 아수라장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냈는가?
죽음의 문턱에서 마주할 이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은, 삶의 계곡 사이에서 도망치지 않고 매 순간 껍질을 찢으며 성실하게 쌓아 올린 우리 뇌와 영혼의 단단한 나이테 그 자체뿐이다. 자신의 전전두엽에 만들어낸 나이테로 이런 한계상황을 어떻게 초월하고 극복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잘 살은 인생이다. 나이테의 숫자가 내가 먹은 어른의 나이이자 근력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나이테의 숫자를 가늠해 보고 이분이 지금까지 어른답게 리더답게 살았다는 칭송을 보낼 것이다.
리는 흥미진진한 사건을 일으키는 삶에 매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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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삶의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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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 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 삶의 나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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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