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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결될수록 더 고독해질까? 디지털 연결의 역설

Jul 4, 2026 ·6분 ·jkyoon · 1
왜 연결될수록 더 고독해질까?
디지털 연결의 역설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데이터 저널리스트 존 번-머독(John Burn-Murdoch)이 아래 제시한 스마트 폰 이전과 이후의 출산율, 결혼비율에 대한 어두운 전망은 절망을 넘어 관계의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UN 세계인구전망(World Population Prospects)이 반복적으로 낙관적 전망을 내놓을 때마다, 각국 국가통계기관의 실제 출생 데이터는 그 전망을 밑돌았다. 그러나 번-머독이 추세로 다시 해석한 데이터는 충격적이다. 스마트폰이 출연한 후 젊은 세대는 연애를 꺼려하고, 성적 관계를 맺지 않으며, 결혼을 포기했다. 관계를 맺는 일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디지털 연결성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 풍부해진 시대에, 인간은 역사상 가장 깊은 관계의 사막에 진입했다.
연결은 기하급수로 늘고 있는데 관계는 고갈되는 이런 현상을 역설이라 부를 수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든다. 역설은 모순을 품은 채로도 공존할 수 있지만,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실제는 공존이 아닌 파국이기 때문이다.
번-머독이 제시한 시계열 데이터를 들여다 보면 첫 번째 균열은 외로움의 세대 역전에서 시작된다. 전통적으로 고독은 노년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 18세에서 34세 사이의 청년층은 65세 이상 노년층보다 더 높은 외로움 겪고 있다. 수백 수천 명의 팔로워와 “연결”되어 있는 세대가 인류 역사상 가장 고립된 세대가 된 것이다. 두 번째 균열은 젠더 대분기(Great Gender Divergence)다. 젊은 여성과 남성은 가치관, 정치관, 생활 방식에서 전례 없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분화되고 있다. 결혼 시장에서 여성은 남성 선택 기준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고 매칭을 충족시키는 상대가 나타나지 않으면 차라리 단독 자립을 선택하는 경향이다. 남성은 가상의 관계인 게임, 포르노,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한 콘텐츠로 관계를 대체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게 된 남녀가 지속 가능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필연이고, 그 필연의 종착역이 출생률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번-머독의 추계 데이터는 스마트폰 보급 후 관계의 파국이 벌어지는 모습을 고발하지만 스마트폰이 왜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가를 해부하지는 못한다. 사회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의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가 이 지점을 파고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하이트도 머독이 제시한 것처럼 스마트 폰의 도입을 원인으로 삼고 있지만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 하이트는 인간이 관계 능력을 형성하는 결정적 시기(sensitive period)인 청소년기 스마트폰 중독이 이들 사회화에 깊숙히 개입해 이들의 생애 전반에 관계형성 자체를 차단하는 문제를 고발한다.
10세에서 14세 사이, 인간의 뇌 신경회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구성한다. 눈맞춤, 타인의 표정 읽기, 갈등 이후의 화해, 침묵 속에서의 신뢰 구축이 모든 것은 신체적 공존 속에서 반복될 때 비로소 시냅스로 각인된다. 그런데 지금의 아동은 이 결정적 시기를 스마트 폰 스크린 앞에서 보낸다. 설상가상으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이들에게 관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구성한 가상의 타자(virtual other)를 향해 반응하도록 훈련시킨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숫자, 틱톡의 조회수, 팔로워의 증감이 자아가치(self-worth)의 척도가 되고, 이 척도를 향해 24시간 몰입하는 존재로 아이들을 재편했다. 스마트 폰은 관계를 잘 맺고 사회의 헌신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전통적 사회화의 목표 자체를 좋아요 수와 활로워 수를 많이 얻은 디지털 명사가 되는 것으로 바꿨다.
하이트는 이것이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관계에 대한 나침반 자체를 망가트린다고 설명한다. 스마트 폰에 빠져 관계 역량을 발달시킬 뇌 신경회로가 미형성된 채 성인이 된 세대는,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 진입 자체를 회피하거나 실패한다.
요즈음 겪는 관계의 단절을 들여다보다 보면 고전이 된 데이비드 리즈만(David Riesman)의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 1950)』을 떠올리게 한다. 리즈만은 전후 미국 소비사회에서 내부 지향형(inner-directed) 인간이 쇠퇴하고 타자 지향형(other-directed) 인간이 부상하는 현상을 포착했다. 내면에 확립된 목적과 가치라는 나침반 대신, 동시대 동료들의 시선을 실시간으로 스캔하는 레이더를 장착한 인간이 리즈만의 고독한 군중이었다. 군중 속에 있으나 진정한 연결이 없기에 고독하고, 타인을 지향하나 타인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기에 허기진 존재다. 이들이 느끼는 고독이 군중 속에서 느끼는 역설적 고독이다.
스마트폰 세상에서 오늘 날 우리가 경험하는 과다 연결에도 관계는 점점 고갈되는 고갈 모습은 현상적으로는 리즈만적 타자 지향성과 비슷해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리즈만의 타자 지향형 인간은 실재하는 동료 집단을 향해 아날로그적 레이더를 작동시켰다. 그 레이더가 잡아채는 신호는 이웃과 직장과 방송이라는 현실의 아날로그 세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추동하는 요즈음 세상의 관계 레이더는 오직 알고리즘이 생성하는 디지털 신호를 수신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사용자의 불안과 시기심과 분노를 연료 삼아 최적화된 콘텐츠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이것은 왜곡된 실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현실 자체가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된 상황이다. 리즈만의 고독한 군중은 이미 형성된 성인의 사회적 성격이 아날로그 소비사회에 의해 변형되는 현상이었다. 타자 지향형 인간도 기본적인 자아 구조와 아날로그 관계 경험의 토대 위에 서 있었다. 아날로그 세대는 고독했음에도 결국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1950년대 미국은 베이비붐의 절정이었다.
하이트가 분석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심층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의 문제다. 자아 구조가 형성되는 시기를 스마트폰이 장악함으로써,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이 되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된 세대가 요즈음 청년들이다. 리즈만의 군중은 관계를 잃은 것이고, 오늘의 세대는 관계하는 법자체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리즈만적 고독이 실존적, 심리적 위기였다면, 오늘의 고독은 디지털 문명의 자기 재생산 능력에 관한 위기다.
디지털을 매개로 연결의 양은 폭증하고 있지만 실제 관계가 줄어들어 결국 인구가 소멸하는 위기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인간이 의미의 원천인 삶의 목적(Purpose)을 발견하는 것은 진공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존재목적은 타자의 맨 얼굴 앞에서 일어난다. 레비나스(Levinas)가 “타자의 얼굴이 나에게 윤리적 책임을 호출한다”고 했을 때, 관계가 단순한 감정적 유대를 넘어 존재의 의미를 소환하는 장소임을 통찰했다. 진정한 관계는 공유된 목적을 실현하는 관계의 마찰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필요 앞에서, 공동의 과업을 향해 공주인으로 협업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스마트폰이 파괴한 것은 단순한 관계의 양이나 질이 아니라 관계가 발전할 수 있는 아날로그 운동장 자체를 파괴한 것이다. 존재우위(Existential Advantage)를 가진 아날로그 인간이 AI와의 경쟁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존재론적 가치를 실현할 개연성은 풍부한 관계적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할 때이다. 그 발견의 과정이 차단된 세대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모르는 채로 디지털 알고리즘이 만들어주는 정체성의 그림자를 자신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런 관계의 고갈에 대해 진성리더십이 제안하는 처방은 기술적 솔루션이 아니다. 진성리더십은 존재목적에 뿌리를 둔 관계의 복원을 소환한다. 관계를 잃은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발견하고, 의미를 잃은 인간이 어떻게 다음 세대를 낳으려 하겠는가?
디지털 연결이 아날로그 관계를 대체하는 세계에서, 존재목적(Existential Purpose)에 뿌리를 둔 진정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개인의 과제를 넘어선다. 이 시대 리더들이 응답해야 할 문명사적 과제다. 리더가 공유된 존재목적으로 아날로그적 공동체를 직조할 때, 그 공동체는 알고리즘이 대체할 수 없는 관계의 밀도를 만들어낸다. 그 밀도 속에서만 우리 인간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연결 기술을 촉발했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상대의 맨얼굴을 직시해가며 하는 아날로그적 소통을 통해서다. 진정한 관계를 생산하는 것은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얼굴을 읽어가며 소통하는 이날로그적 소통을 통해서다. 디지털 연결은 관계의 필요조건이지만 진실한 관계의 충분조건은 맨얼굴로 대면해 정서를 교감하는 아날로그 소통이다.
미래를 기약하는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디지털 연결의 사막에서 벗어나 관계의 오아시스인 아날로그 소통을 복원해라.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인사조직전략 명예교수 윤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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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