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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정한 순간 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자초한 고난 vs 강제된 고난
목적을 정한 순간 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자초한 고난 vs 강제된 고난
고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스스로 자초한 고난과 강제된 고난이다. 강제된 고난은 운이 나빠 천재지변을 만나는 경우다. 불이 나거나 폭우에 집이 쓸려 내려가거나 폭풍에 집이 날아가는 일이다. 사실상 이런 고난은 피해갈 방법이 없지만 이런 종류의 고난은 정말 드물다. 우리가 대부분 인생에서 겪는 고난은 90% 이상이 스스로 자초한 고난이다.
지금 엄청난 고난을 경험하고 있을 계엄 대통령 윤석열과 신세계 스타벅스 정용진, 쿠팡의 김범석, 하이브의 방시혁처럼 자아가 탐욕으로 부풀어 올라 일반적으로 용인되던 길과는 전혀 다른 길로 탈로했을 때는 스스로 자초한 고난이 찾아온다. 이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사람들도 같은 고난의 길을 걷는다. 과도한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침해를 가했을 때도 반드시 고난이 찾아와 보복한다. 이런 고난은 정도의 길에서 탈로한 사람들이 겪는 자초한 고난이다.
정도의 길을 탈로했을 때 찾아오는 고난과는 달리 스스로 자초했지만 결과는 생산적인 고난도 있다. 존재목적을 깨달은 리더가 겪어야 하는 고난은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근력을 만들어준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목적을 깨닫기 전에는 미풍조차 느끼지 못하고 오두막집 안에서 오두막의 천장을 하늘이라고 알고 살고 있었다. 가끔 오두막집 사립문을 일렁이게 만드는 살랑 바람은 있었지만 사립문을 부수는 역풍은 아니었다. 조직의 관성, 사회의 흐름, 타인의 기대라는 바람이 나를 진행 방향으로 밀어주고 있어서 바람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떠밀리며 이것을 전진이라 불렀다.
어느 날, 존재목적이 찾아오는 순간 모든 것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뒤에서 밀어주던 모든 바람이 앞장서서 역풍으로 나를 쓰러트렸다. 가시밭길을 걷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일상적 삶을 버리고 목적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는 이유다.
목적은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깨달아지는 것이다. 설정(設定)이 의지의 행위라면, 깨달음(覺)은 존재의 사건이다. 내 삶이 향해야 할 방향이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지금까지 나를 밀어주던 바람이 맞바람으로 전환된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이 아니다. 내가 바뀐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착각한다. 역풍을 잘못된 신호로 읽는다. 진실은 정반대다. 역풍의 강도가 자신이 설정한 목적의 진정성의 정도다. 역풍 없이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 목적이 아니다. 사회적 흐름과 다르지 않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역풍은 외부에서만 몰아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격렬한 저항은 안에서 온다. 뇌가 저항한다. 인간의 뇌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시냅스 지도(synaptic map)를 구축한다. 수십 년의 삶이 만들어낸 이 지도는 뇌의 기저핵(basal ganglia)에 새겨진 신경 고속도로다. 생각하지 않아도 달리는 길,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이동하는 경로가 기존의 자아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헤비안 학습(Hebbian learning)의 원리대로, 함께 발화한 뉴런들은 함께 연결된다(neurons that fire together, wire together). 수십 년의 발화가 만든 연결은 철조망보다 단단하다.
목적을 깨닫는다는 것은 이 고속도로를 벗어나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산길을 걷겠다는 선언이다.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기저핵은 즉각 경보를 발령한다. 이것은 위협이다. 에너지를 낭비하는 비효율적 경로다. 돌아가라. 뇌의 저항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다. 생존 본능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 무섭다. 목적이 강하게 논리로 설득하지 못하면 이 뇌의 저항을 이길 방법이 없다. 저항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냅스의 문제다. 외부의 역풍과 내부의 신경 저항이 동시에 몰아치는 이중의 역풍 앞에서, 직선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는 필패(必敗)한다.
시냅스 포팅(synaptic porting)은 뇌에 이미 그려진 지도대로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향한 방향으로 쇄빙선을 운용하는 작업이다. 새로운 목적지를 향한 행동을 설계하고, 그것을 작은 단위로 반복하고, 그 반복을 통해 기저핵에 새로운 신경 경로를 새긴다. 한 번의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수백 번의 작은 뒤집기가 뇌의 시냅스 지도를 서서히 재편한다.
역풍을 에너지로 바꾸는 뒤집기 전략
뒤집기 전략은 요트가 역풍을 뚫고 진행하는 방식과 같다. 요트는 역풍을 정면으로 받으면 멈춘다. 그러나 역풍과 45도 각도를 유지하면 역풍 자체가 추진력이 된다. 돛의 양력(揚力)이 배를 목적지 쪽으로 끌어당기는 원리다. 방향을 바꿔가며 역풍과 45도를 유지하며 지그재그 항해하는 기법을 태킹(tacking)이라고 부르는데 태깅은 굴복이 아니다. 역풍의 에너지를 전진의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높은 산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사람들은 수십 년에 걸쳐 닦은 스위치백(switchback) 산길을 만들었다. 지그재그로 정상을 향해 길을 만든 것이다. 지그재그 길은 중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중력을 이용하여 고도를 높이는 지혜다.
급진거북이의 뒤집기 전략에는 세 가지 좌표가 있다.
첫째는 존재목적이라는 고정점이다. 존재목적은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든 변하지 않는 북극성이다. 둘째는 지그재그 형태인 비전 경로다. 현실의 저항과 협상하며 목적을 향해 전진하는 가변적 경로다. 마지막으로 가치 라인이 경로의 양쪽 경계를 규정한다. 요트가 어느 쪽으로 태킹하든 가치의 경계선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처럼, 목적으로 향하는 지그재그 실행에도 양보할 수 없는 윤리적 임계선이 있다.
역풍을 이용해 앞으로 전진하는 뒤집기(Flipping) 전략에서 ‘전환 Coming About’의 순간이 온다. 한쪽 태킹에서 반대편 태킹으로 전환하는 그 순간, 배는 잠시 역풍을 정면으로 받는다. 가장 느리고, 가장 취약한 순간이다. 이 전환의 순간 평소대로 속력을 높이기 위해 빨리 빨리를 외친다면 요트는 뒤집힌다. 지그재그가 함축하듯 반복되는 전환 없이는 전진이 없다. 전환의 성공을 가져오는 것은 목적에 대한 방향성이다. 겉으로는 반복처럼 보이는 지그재그 안에서 매번의 뒤집기가 새로운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의 축적이 목적지를 향한 진정한 전진이 된다.
역풍이 만드는 근력:
Antifragility
충격에 부서지지 않을 뿐 아니라 충격으로 인해 더 목적지에 도달할 개연성이 강해지는 쪽으로 발달한 근력이 안티프래질리티다. 뼈가 압력을 받을 때 더 조밀해지고, 근육이 저항을 만날 때 더 강해지는 것처럼 자초한 역풍을 뚫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근력이 안티프래질리티다. 지그재그 항해를 반복하는 요트 선원은 역풍 없이 순풍만 받은 선원보다 훨씬 정교한 항해 능력을 갖는다. 쇄빙선이 뚫은 시냅스 경로는 저항을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다음 번 역풍 앞에서 더 유연하고 더 견고하다. 역풍이 만들어낸 뒤집기의 경험이 곧 안티프래질의 근력이다.
진성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이 단련되는 것은 순풍의 시간이 아니다. 목적을 깨달은 순간부터 몰아치는 역풍 앞에서, 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포기가 아닌 뒤집기로, 회피가 아닌 쇄빙으로 나아간 시간들이 리더의 존재 자체를 안티프래질로 만든다. 그것이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전에서 얻어진 것이기에, AI가 대체할 수 없는 존재우위(Existential Advantage)가 된다.
목적을 선언했음에도 역풍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선포한 목적이 유사목적이라는 증거다. 역풍은 경험한다는 것은 자신이 설정한 목적이 진짜라는 증거이며, 안티프래질의 근력을 키우는 훈련장의 문이 열렸다는 신호다.
맹자의 고자장에서 언급한 고난은 급진거북이가 뒤집기 전략을 통해 안티프래질리티를 만들어내는 자초한 고난이다. 고난을 자초한 만큼 이 고난이 부가하는 시험도 아주 정상적인 시험이다.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넘어서는 <고시패스>는 존재목적이 있는 누구에게나 부과된 시험이다. 번성근력(Antifragility)를 만들기 위해선 누구나 넘어서야 할 고난이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천장강대임어시인야)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하면
必先勞其心志 (필선고기심지)
반드시 먼저 그가 마음의 뜻을 세우기까지 괴로움을 주고
苦其筋骨 (노기근골)
그 육신을 피곤케 하며
餓其體膚 (아기체부)
그 몸을 굶주리게하고
窮乏其身 (궁핍기신)
그 몸을 궁핍하게 한다.
行拂亂其所爲 (행불란기소위)
그가 하려는 바를 힘들게 하고 어지럽게 하는 것은
是故動心忍性 (시고동심인성)
마음을 쓰는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참된 성품을 기르고
增益其所不能 (증익기소불능)
불가능하다던 일도 능히 해낼 수 있도록 키우기 위함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윤정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