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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워 이기기 실존적 자기주권자 모형

Jul 4, 2026 ·8분 ·jkyoon · 1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워 이기기
실존적 자기주권자 모형
<모두가 자신의 삶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드라마가 장안의 화재다. 바쁜 삶에 치어서 살다 보면 자신이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지를 잃어버리고 그냥 열심히 살기 위해 열심히 산다. 존재목적에 대한 각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삶을 사회학자 듈껭이 아노미(Anomie)라고 칭했는데 목표에 대한 속도전을 추구해왔던 대한민국은 국가적으로 아노미 상태라는 조용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아노미(무가치함에 대한 인식)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질병이다.
어느 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무가치함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때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인구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서 생긴 균열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사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아노미 자살 충동을 감추고 살고 있다. 실제 통계로도 대한민국은 아노미 자살인 청소년 자살과 노령인구의 자살이 OECD 국가 중 오랫동안 수위를 차지해왔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황동만의 형 황진만은 목적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지 못하자 자살을 시도한다.
드라마는 무가치함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숫자가 정해진 제로섬 개념인 주인공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장면들을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고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집단적 조직정치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정해진 파이를 놓고 싸우는 삶은 답이 아니다. 이런 주인공 자리 싸움은 모두가 정서적 상처만을 안고 사는 삶의 시작이고 아노미 자살의 원인이 된다.
기업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업의 실질적 주인은 정해져 있고 직책이 높을수록 이 주인의 권리를 나눠가지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조직정치가 횡행한다. 결국 자리를 차지한 소수만 승자이고 대부분이 패자로 전락한다. 기업이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주문하지만 구성원은 이런 주인의식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소수의 주인 뿐이라는 허구 때문에 회사의 주문에 지극히 냉소적이다. 하이닉스와 삼성반도체의 경우처럼 회사 생활에서 무가치함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분쟁거리가 생길 때마다 파이를 놓고 필사적으로 싸운다. 이들에게 공정성은 그냥 무가치함을 극복하려는 명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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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런 모두가 조직이나 사회에서 주인이 될 수 없는 문제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으로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모형으로 <삶의 자기주권자 모형(The Model of Self-Sovereigner)>을 제안해왔다. 또한 이 모형에 따라 자기주권을 확보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조직, 사회, 공동체 안에서만 모두가 주인으로 대접 받는 삶을 향유할 수 있음을 입증해왔다.
삶의 자기주권자 모형
자기 삶의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방관자와 대리인의 삶을 청산하고 자기 삶의 실존적 주체이고 입법자이자 집행자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삶의 자기 주권자 모형’은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주인이고 작가이고 행위자임에 대한 각성이다. 주권자 모형은 인간의 실존적 도약을 설명하는 구체적 인과적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본 모형은 외생변수(주인의식), 매개변수(주인되기), 최종 종속변수(주인력)의 3단계 축으로 구성되며, 인지적 자각이 치열한 실천적 훈련을 거쳐 어떻게 안티프래질(Antifragility, 번성근력)한 실존으로 완성되는지를 증명한다. 자기주권자 모형으로 안티프래질리티의 근력을 형성한 사람들만 사회와 동료와 직장은 진정한 주인임을 인증한다. 사회, 조직, 공동체는 실제로 이들에게 선택적으로 리더로의 자리를 부여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돕는다.
주인의식 (Mindset of Ownership):
외생변수
모형에서 주인의식을 구성하는 두 외생변수는 목적의식과 자기긍휼이다.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문제를 모두 감당하지 못하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자신이 풀지 못한 문제에 치여 쓰러지는 고통을 경험한다. 이때 쓰러진 자신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내면의 정신모형이 바로 ‘주인의식’이며, 이는 자기긍휼과 목적의식이라는 두 가지 하위 변수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자기긍휼 (Self-Compassion): 실패와 고통의 순간에 자신을 비난하거나 문제를 외부로 투사하지 않고, 그 고통마저 자신의 삶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능력이다. 고통조차 사랑하여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실존적 용기를 뜻한다.
목적의식 (Purpose): 쓰러진 자신을 ‘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이유다. 자기긍휼이 고통을 품어 안는 품이라면, 목적의식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북극성이다.
주인의식은 척박한 땅에 뿌려진 ‘씨앗’과 이를 품어주는 ‘토양’의 관계와 같다. 자기긍휼은 가뭄과 폭풍우라는 고통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내는 대지(토양)이며, 목적의식은 그 어둠을 뚫고 하늘을 향해 자라나야 하는 이유를 품은 씨앗의 유전자다. 이 둘이 결합해야만 비로소 주인으로 살아갈 정신적 맹아(芽)가 튼튼하게 형성된다.
주인되기 (Becoming an Owner)
매개변수
핵심은 삶과 일을 통해 주인으로 대접 받을 수 잇는 실천 훈련을 통해 주인으로서의 본질인 번성근력(Antifragility)을 확보하는지의 문제다. 주인의식이 내면의 멘탈모형으로 구축되었다면, 이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정교한 지도로 그려내며 체화하는 과정이 매개변수인 ‘주인되기’다. 이 단계는 네 가지 심리적 자본을 치열하게 훈련함으로써, 단순히 충격을 견디는 복원력을 넘어 충격을 동력 삼아 더 강해지는 안티프래질(Antifragility, 번성근력)의 상태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자긍심 훈련 (Self-Esteem):
자신의 본질적 목적을 각성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평범한 수준을 뛰어넘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여 자신을 고양시키는 과정이다.
내재적 자기규제 (Internal Locus of Control):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상황의 운전대를 타인이나 운명에 넘겨주지 않고, 내가 내 삶의 원인이자 주인공임을 천명하는 훈련이다.
정서적 안정성 (Emotional Stability):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사방이 막막할 때도 무분별하게 화를 내거나 좌절하거나 비탄에 빠지지 않으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희망을 추스리는 힘이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느끼는 부정적 정서의 원인과 본질을 이해하지 못할 때 부정적 정서는 물귀신으로 전락해 삶을 망치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자기효능감 (Self-Efficacy):
앞선 세 가지 훈련을 통합하여,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나는 결국 주인으로서 행동하고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다.
4가지 매개변수인 자긍심, 효능감, 정서안정, 내부통제는 심리학에서 핵심자기평가(Core Self Evalution)로 연구되어 온 요소들이다.
주인력
최종 종속변수
주인력이란 주인으로 대접받기 위한 완전한 독립성과 책무성을 성취한 상태를 의미한다. ‘주인되기’의 매개 과정을 거친 인간이 도달하는 최종 진화 단계가 바로 ‘자기 주권자(Self-Sovereigner)’로서의 주인력이다.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의 위임자(Principal)가 지분과 자본이라는 제도적 권리에 의존하는 주인이라면, 주인력을 행사하는 자기 주권자는 내면의 도덕률과 실존적 자율성에 기반한 진짜 주인이다. 주인력을 통해 자기 주권자의 지위에 도달한 인간은 다음과 같은 5대 주권적 행위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생각의 자율성: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통념에 오염되지 않고, 자신의 독립된 이성으로 사유한다.
문제의 재정의: 세상이 규정한 프레임을 거부하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문제의 본질을 스스로 정의한다.
자율적 결정: 외적 보상이나 처벌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북극성에 따라 독자적으로 결단한다.
책임 있는 설명: 자신의 결정과 행동의 맥락을 당당하고 진실하게 설명(Account)할 수 있다.
실존적 책무성: 결과가 실패로 돌아오더라도 핑계를 대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책임으로 짊어진다.
삶의 자기주권을 인정받은 사람들만 사회는 감시와 통제의 기제를 해체하고 이들이 스스로의 목적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집행하고 결과를 정산하는 자유를 허락한다. 이들은 이런 자유와 자율에 따라 삶과 일에서 자기주권을 행사하고 일반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영향력과 행복과 번성을 구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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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통해서도 본인의 자기주권모형을 검증해볼 수 있다.
극 중 인물들은 현대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부품으로 전락해 스스로의 무가치(아노미)함과 싸우며 쓰러지는 현대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드라마 초반의 주인공은 타인의 평가와 사회가 정한 기준(성공, 스펙)에 자신을 맞추느라 늘 불안해한다. 실패가 거듭되자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으며 고통에 치여 쓰러진다.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직면하지 못하고 환경을 탓하는, 즉 외재적 통제에 갇힌 철저한 ‘대리인(Agent)’의 상태다.
전환점은 뼈아픈 실패의 한복판에서 찾아온다. 주인공은 마침내 “왜 나는 남의 각본을 연기하며 괴로워했는가”를 질문한다. 쓰러진 자신을 발로 차는 대신, 눈물을 흘리며 그 무가치함의 고통 자체를 온전히 껴안는다(자기긍휼). 그리고 “남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온전한 삶의 서사를 쓰기 위해 살겠다”는 존재의 이유를 발견한다(목적의식). 멘탈모형으로서의 주인의식이 싹트는 순간이다.
주인의식을 장착한 주인공은 삶의 태도를 바꾼다. 회사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높은 가치적 목표를 세워 내면을 고양시키고(자긍심), 예기치 못한 위기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남에게 화를 내가며 투사하는 행위를 규제하고(정서적 안정성), 상황의 리모컨을 남에게 쥐여주지 않고 주도적으로 대안을 찾는다(내재적 자기규제).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는 환경에 휘둘리는 유령이 아니다”라는 안티프래질한 자기효능감이 뼈와 근육으로 자라난다. 실제 무가치한 찌질이의 전형 황동만은 자신이 겁장이 찌질이였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찌질함 때문에 감춰졌던 재능을 인정받아 영화감독으로 대뷔하고 갖은 쓰러짐과 일어섬의 반복을 통해 안티프래질리티의 근력을 확보한다.
드라마의 대단원에서 주인공은 마침내 자기 주권자(Sovereigner)의 지위에 도닥한다. 조직이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세상이 무가치하다고 손가락질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신의 눈으로 다시 정의하고, 퇴사든 정면 돌파든 스스로 결정하며, 그 결과로 올 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을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선언한다.
타인의 인정이라는 마약에 의존하던 노예의 삶을 끝내고, 자기 삶의 영토를 통치하는 진정한 ‘Self Sovereigner(자기 주권자)’로 거듭난 것이다. 이 모형은 무가치함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모든 현대인에게, 실존의 주권을 회복하는 유일한 구원의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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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