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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북극성과 내 맘 속 조족등 발광체가 만들어지는 원리

Jul 4, 2026 ·5분 ·jkyoon · 1
하늘의 북극성과 내 맘 속 조족등
발광체가 만들어지는 원리
어제(2026년 6월 4일) 있었던 이화진성리더십 아카데미(교장 #김영주; 교감 #우성희) 수료식에서 한 진성 도반께서 진성리더로 되어가는 본인의 삶 삶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삶아가면서 북극성의 역할도 결정적이었지만 조족등의 도움도 컸다는 말씀을 주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일례로 본인은 매일 읽는 묵상을 조족등으로 삼고 살고 있다고 고백하셨다. 진성리더로서의 삶은 깜깜한 밤에 북극성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조종등을 가지고 사부작 사부작 걸음을 옮겨 약속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조족등은 지금의 손전등으로 조선시대에 발명된 것을 알려졌다. 조족등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방을 밝히는 청사초롱과는 다르다.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발밑을 집중적으로 비춰주던 ‘조족등(照足燈)’이라는 독특한 조명 기구가 있었다. 한자 뜻 그대로 발을 비추는 등이라는 의미인데, 주로 밤눈을 밝히며 도적을 잡거나 순찰을 돌던 포졸들이 사용했다고 하여 ‘도적등’이라고도 불렸다. 조족등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구조에 있다. 둥근 박 모양의 등 내부에는 이중 철제 고리로 연결된 회전식 촛대가 장착되어 있어, 등을 어떤 방향으로 흔들거나 심지어 거꾸로 뒤집어도 촛대는 항상 수평을 유지했다. 덕분에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도 불이 꺼지거나 촛농이 흐르지 않았으며, 사방을 두꺼운 가죽이나 종이로 막고 앞쪽에만 구멍을 내어 빛이 필요한 곳만 은밀하고 집중적으로 비출 수 있었다. 밤길이라는 험난한 현실 속에서 실족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게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주체적 조명이었던 셈이다.
몇 달 간 인제에 살면서 오후 늦게 설악산을 올라 밤에 산을 내려올 때 매번 손전등을 사용해 무사히 하산 할 수 있었음에도 손전등의 가치를 놓치고 살았는데 이번에 이화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도반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족등의 가치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밤의 설악산 대청봉에서 속초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야간 산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속초의 불 빛이 아무리 강력해도 손전등 없이는 한 발도 전진할 수 없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산 정상에서 저 멀리 속초 시내가 뿜어내는 불빛은 거대한 바다 위의 등대처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큰 방향타 역할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속초의 불빛이 아무리 찬란하게 살아있어도, 내 손에 발밑을 비춰줄 조족등이 없다면 험준한 산길을 단 한 걸음도 내려올 방법이 없다. 속초의 불빛은 거시적인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을 주지만, 벼랑 끝과 돌부리가 가득한 등산로에서 실제로 실족하지 않도록 발길을 잡아주는 것은 오직 자신이 쥐고 있는 조족등뿐이다. 대청봉에서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결코 탄탄대로의 직선길이 아니다. 굽이치고 꺾이는 미시적인 지형 속에서 탈선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 순간 조족등의 불빛이 필수적이며, 속초의 불빛은 그 굴곡진 길들이 아주 품을 벗어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큰 울타리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이러한 두 불빛의 상호작용은 근대 철학의 거장 임마누엘 칸트가 평생을 바쳐 탐구하고 자신의 묘비명에 새겼던 두 가지 경외 대상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칸트 철학에서 ‘순수이성비판’이 다루는 하늘의 빛나는 별은 우주의 인과법칙과도 같아서, 세상 모든 사람이 의지해가며 객관적 방향성을 잡을 수 있는 보편적인 ‘3인칭의 불빛’을 상징한다. 반면 ‘실천이성비판’이 강조하는 마음속의 도덕법칙, 즉 양심은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내 마음속에 난 ‘1인칭의 길’을 묵묵히 비춰주는 조족등이다. 3인칭의 보편적 진리가 삶의 거대한 이정표가 되어준다면, 1인칭의 양심은 내가 처한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지금 당장 어떤 걸음을 내딛는 것이 의로운지를 정직하게 가리킨다.
성경 역시 이 두 가지 빛의 역할을 명확히 대조하며 결국 조족등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지를 찾아 먼 길을 여행할 때 의지했던 하늘의 별이 거시적 방향을 인도하는 북극성의 역할이었다면, 인간이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실존적 영역에서는 발밑을 비추는 작은 등의 역할을 요청한다. 시편 119편 105절의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고백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성경이 말하는 말씀의 빛은 먼 미래를 한꺼번에 환하게 밝혀주는 탐조등이 아니라, 캄캄한 밤길에서 당장 안전하게 내딛어야 할 바로 그 한 걸음의 발앞을 겨우 보여주는 등불이다. 험한 세상이라는 산길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돕는 영적인 조족등인 것이다.
어두운 산길을 안전하게 내려오는 유일한 방법은 저 멀리 속초의 불빛에 의지해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내 손의 조족등(손전등)에 의지해 눈앞의 길을 잃지 않고 사부작사부작 걸어 내려오는 것뿐이다. 만약 이러한 엄연한 현실을 망각한 채 속초의 거시적 방향성만을 과신하며 눈앞의 지형을 살피지 않고 내달린다면, 거친 산속에서는 반드시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치명적인 사고를 면치 못하게 된다. 고결한 비전이나 목적의 정당성만을 믿고 매 순간 마주하는 현실의 도덕성과 구체적 실천을 소홀히 하는 삶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삶의 개입이 완전히 끊어지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가끔은 하늘의 북극성을 바라보며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자신만의 1인칭 조족등(손전등)에 의지해 묵묵히 삶의 산길을 걷게 된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마침내 설악산의 험한 하산길을 무사히 마치고 평지에 가닿을 때, 비로소 내 손의 조족등과 저 멀리 속초의 불빛이 하나로 합일되는 경이로운 종착지를 경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삶의 개입이 끝나는 바로 그 임종의 순간,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자신이 가는 길을 1인칭으로 정직하게 비춰오던 마음의 별은 마침내 지상의 책무에 대해 정산하고 저 높은 하늘의 북극성으로 격상된다. 자신이 치열하게 밝혀왔던 주체적인 조족등의 불빛이 이제는 하늘에 높이 걸려, 어두운 세상에 남겨진 수많은 타인들에게 올바른 삶의 궤적과 방향을 가르쳐주는 보편적인 3인칭의 진리로 영원히 전환되는 것이다. 본인 이름의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자신을 비추던 발광체가 죽어서도 남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온전한 발광체로 탄생한 것이다. 캄캄한 밤하늘에 세상을 비추는 성운은 조족등과 북극성을 통해 세상에 대한 소임과 약속을 지킨 사람들이 만든 발광체들의 생태계인 셈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삼인칭 북극성과 일인칭 조족등의 수렴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산 속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삶으로 삶을 종결한 불운의 사람이다. 죽어서도 하늘의 별로 떠오르지 못한 기구한 삶을 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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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