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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을까? 방호기제 내려놓기 수업
정말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을까?
방호기제 내려놓기 수업
요즈음에 늘어나는 사회적 고아에 대한 생각에 꽂혀 있어 이들에게 사회적 부모 역할을 하는 분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자주 보고 있다. 사회적 고아는 양육기관의 돌봄에서 벗어난 고아들이거나 집에서 독립해 살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부모에 기댈 수 없는 청년들, 학교를 졸업했어도 취업을 할 수 없는 전업 청년 등 우리 사회에 편재해 있다. 세상이 너무 급격하게 달라져 있어 부모가 부모로서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되어 부모의 울타리로부터 심정적으로 가출해서 스스로를 보수화시킨 청년들도 따지고 보면 시대가 돌보지 못한 고아다. 혈연적 자식이 아님에도 이들 청년들을 돌보는 부모를 자청해 맨토링하는 어른이 사회적 부모다.
예전에 보았다가 이런 시대적 이슈 때문에 최근에 다시 본 이상한 제목의 영화가 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라는 영화다. 2025년 2월에 개봉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공동 연출했던 김혜영 감독 데뷔작이다. 상실과 아픔을 겪은 사회적 고아와 사회적 부모가 서로를 통해 위로받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따뜻하고 나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줄거리는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집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한 고등학생 한국무용 전공자 ‘인영'(이레 분)이 자신이 속한 예술단 건물에 몰래 숨어 살다 엄격한 예술감독 ‘설아'(진서연 분)에게 들키면서, 어쩌다 보니 시작된 두 사람의 기묘한 한집살이를 다룬다. 배우 이레, 진서연, 정수빈, 이정하가 주연을 맡았으며, 배우 손석구 씨가 동네 괴짜 약사이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따뜻한 사회적 부모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영이도, 설아도, 나리도 모두 정말로 괜찮았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바램이 제목에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이 영화를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 해군리더십센터 리더십 교수로 있는 #임여진 코치가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놀랍게도 책의 제목이 <#괜찮지_않아도_괜찮아:#임여진의_마음소통_레시피>였다. 임여진 코치는 학사장교로 임관한 후 해군에 뜻을 두고 리더십센터에 지원해 해군의 리더십 증진의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재원이다. 여성으로써 대한민국 해군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특이한 분이다. 사명감이 넘치지만 함정과 잠수함에서 같이 생활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생긴 남성 중심의 극보수적인 해군 문화를 잘 알고 있던터라 매번 연락할 때마다 걱정이 되어 <괞찮은지?><정말 괜찮은지?>를 습관적으로 물었었다. 책의 제목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여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급하게 책을 주문해서 단숨에 읽었다.
임여진 코치의 출간 소식은 <괜찮아>를 중심으로 영화, 책, 삶이 같이 펼치는 강한 공시성(Synchronicity)을 울림으로 체감한 특이한 사건이었다.
책은 단순한 위로나 추상적인 조언을 넘어서고 있었다. 현장에서 수많은 구성원과 리더들을 마주하며 쌓아온 코칭과 리더십 훈련 경험을 토대로 쓴 ‘심리 실천서’였다. 안타깝게도 책 여기저기서 내가 짐작해왔던 임여진 코치가 겪고 견뎌온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임여진 코치는 항상 조직의 성과나 결과물보다 ‘사람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리더십 코치로 정평이 나있다. 책에도 이런 철학을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지혜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평소 약속했던 인간을 시스템 효율성 위에 세워야 한다는 리더십 철학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었는지가 모든 사례에 녹아 있었다. 조직 안에서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회복이 어떻게 다시 건강한 관계성으로 이어지는지를 다루고 있었다. 독창적인 접근법인 ‘통합예술코칭’ 방법론도 눈에 띄었다. 글쓰기, 그림,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적 도구를 활용하여 딱딱한 이론 대신 부드럽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내면에 침식되어 자신도 모르는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음을 배웠다. 예술의 고유한 방식이 숨겨진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가 풍요로왔다.
임여진 코치는 책의 서두에 우리는 아픈 상대에게 예의 상 <괜찮는지?>를 물어보지만 대답은 <괜찮다>라는 답을 듣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했다. 진짜 상대의 아픔에 한발 다가가기 위해 진심으로 묻는 것은 아니다. 아픔에 대한 이런 방식의 접근은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 모두 아픔을 감추게 되는 자기방호의 갑옷을 입게 만든다. 아픔에 대해 갑옷을 두르면 아픔이 밖으로 투사되지는 않아도 아픔은 갑옷 속에서 구더기를 만들고 상처는 곪아 터져 더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
김혜영 감독의 영화나 임여진 코치의 책은 모두 방호기제가 가진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두 작품은 ‘상실의 슬픔을 억지로 숨기며 괜찮은 척하는 존재들’이 만나 서로의 불안을 가만히 안아주고, “괜찮지 않은 상태를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진짜 괜찮아진다”는 역설적 치유 과정을 보여준다. 치유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주인공 인영(이레 분)은 엄마를 잃고 집까지 빼앗긴 비극적 상황에서도 눈물을 흘리는 대신 “전 괜찮아요!”를 연발하며 씩씩한 척 숨어 산다. 예술감독 설아(진서연 분) 역시 냉철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지만 약을 달고 산다. 두 사람 모두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괜찮음’이라는 단단한 갑옷을 입은 셈이다. 영화는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들켜 한집살이를 하며, 그 ‘척’하던 갑옷(방어기제)을 서서히 내려놓는 과정을 보여준다.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고아와 사회적 부모가 혈연을 떠나 서로를 어떻게 치유하고 절대적으로 환대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임여진 코치는 책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억누르고 집착하는 상태에 덮어놓은 거적을 용기 있게 들춰내라고 조언한다. 진정한 회복의 시작은 내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기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둘째, 예술을 통한 아픔의 언어화도 겹치는 부분이다. 영화 속 인영의 전공은 ‘한국무용’이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슬픔, 억압된 감정, 삶의 무게가 인영의 몸짓과 춤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출된다. 설아 역시 춤을 매개로 인영과 소통하며 자신의 경직된 내면을 들여다본다.
임여진 코치 프로그램의 빛나는 부분도 바로 글, 그림, 음악 등을 활용한 ‘통합예술코칭’이다. 논리적인 말은 감정을 왜곡하거나 숨기기 쉽지만, 예술이라는 도구는 내면의 무의식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데 도움을 준다. 영화 속 한국무용은 임여진 코치 책에서 강조하는 ‘예술을 통한 감정의 인식과 표현’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구현된 최고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책과 영화가 만나는 마지막 공통분모는 통제 불가능한 삶을 받아들이는 ‘초연함’이다.
고등학생인 인영이가 감당하기에 세상은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 투성다. 하지만 영화는 인영이가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며 승리하는 결말 대신,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곁에 있는 사회적 부모와 연대하며 꿋꿋하게 발을 내딛는 모습을 그린다.
임여진 코치가 책의 1장(초연함)과 4장(불확실성과의 조화)에서 다루는 핵심 메시지도 같다. 인생의 풍랑 앞에서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라며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고, “지금 내 삶이 괜찮지 않지만, 이 흐름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냈을 때 마음은 자유를 얻는다고 제안한다.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주인공들이 모여 겪는 실존적 서사이고, 임여진 코치의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는 그들이 그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던 내면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심리적 지도(Map)다.
상처를 숨기며 고군분투하는 현대의 리더들이나 구성원들에게, 이 두 작품은 “진정한 괜찮음(Well-being)은 역설적으로 나의 약함과 괜찮지 않음을 솔직하고 용기 있게 대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공통의 메시지를 전한다.
“괜찮지 않아도 이제는 괜찮아진다”는 역설적인 고백처럼, 자신의 방호기제를 해체하고 부족함과 불안을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에서 진짜 치유와 리더십의 성찰이 시작된다는 점을 잘 짚어낸 책이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 괜찮아를 방호기제로 삼아 괜찮아를 연발하지만 이런 반복이 지속될수록 점점 더 쓰러지는 자신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면 책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