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끝이 없다면 스토리의 시작도 없는 것이다
스토리의 끝이 없다면 스토리의 시작도 없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다. 시작은 용의 머리에서 시작하지만 끝은 뱀의 꼬리로 끝을 맺는 일이 비일 비재함을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말이다. 자신의 삶의 스토리가 용두사미라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가며 소모적인 삶을 산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세상을 해석하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생긴 일이다. 우리 인간의 뇌가 현실을 해석해서 재구성하는 방법은 컴퓨터가 모든 정보를 객관적으로 처리하고 평균을 내서 해석하는 방식과는 180도 다르다. 인간의 뇌는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의 플롯을 따라가며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평가한다.
인간의 뇌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삶의 플롯은 초반에는 미천하고 죄인으로 살았다 하더라도 삶의 마지막 국면에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 이 미천하고 죄가 많은 자신을 구원해 낸 레 미제라블의 장발잔의 삶 같은 삶이다. 이와 같은 삶의 플롯은 자신만의 신화를 완성해낸다. 신화의 플롯은 자신이 자신을 구원해낸 영웅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뇌는 이와 같이 자신이 자신에게 만들어낸 자신의 영웅적 스토리를 최고의 스토리로 평가한다.
이와 같은 최고의 영웅적 스토리를 갖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마지막의 삶의 결과를 어떻게 마무리 했는지가 결정적이다. 암살된 독재자들이 살아 생전에는 그 사회에 아무리 많은 공헌을 했다하더라도 절대로 좋은 리더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다 결말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해석해내는 뇌의 작용이다. 아무리 독재자들의 생전의 업적을 미화시키는 작업을 해도 결국 뇌를 이길 수는 없다. 그런 독재자들을 반면 교사로 삼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학습해서 성숙한 지도자가 되는 방법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죽은 독재자를 미화시키는 운동은 시간낭비이다. 뇌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카네기와 록펠러가 젊었을 때 악덕 기업주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성리더가 되어 자신의 미숙했던 과거의 자신을 구원해내는데 성공했고 이 성공을 높히 평가해서 사람들이 록펠러와 카네기의 과거를 다 용서해주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구선생님도 젊었을 때는 살인을 했고, 간디도 젊었을 때는 헛바람이 든 변호사였었다. 하지만 이들은 삶의 마지막 국면에 자신만의 성품을 완성했고 이 성품의 완성을 통해서 자신을 구원해내는데 성공한 영웅들이다.
자신이 좋은 가문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라서 지금도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이런 사람들에게도 영웅적 스토리로 삶을 마무리 하는 방법이 있다. 행복한 삶의 결론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마지막의 삶의 베이스 캠프를 일반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더 높은 곳에 만들어 여기에 도달하는 희생적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는 삶이 이들에게는 가장 값진 삶의 플롯이 될 것이다.
자신을 구원해내는 영웅의 여행으로써의 삶을 벗어나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결말도 없이 마무리 한다면 자신에게 삶은 시작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만의 영웅의 여행으로써의 삶의 스토리가 없다면 인생은 노랫말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그네 길의 삶을 산 사람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