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케 신스케는 자신의 그림 동화인 『이게 정말 나일까?』 에 아이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거울 앞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도록 시킨다.

“내가 나인 걸 어떻게 알지?”

그리고 스스로를 분해해보기 시작한다. 머리 속엔 지우개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고, 가슴 속엔 다른 누군가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우스꽝스러운 상상처럼 보이지만, 아주 본질적인 물음이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그런데 정작 이 질문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아이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이다.

디지털 세계 속 어른들은 매일 알고리즘의 명에 따라 무수한 과제와 과제에 최적화된 역할을 수행한다. 회사에선 ‘성실한 직원’, 집에선 ‘쿨한 부모’, 온라인에선 ‘공감 잘하는 사람’. 피드를 올릴 때는 즐겁고 여유로운 사람을 연기한다. 사진을 찍는 순간 속마음은 “난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이 생기지만 그런 질문은 화면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 시대 어른들은 일종의 디지털 알고리즘이 만든 프로크루테스 침대’에 누워 있다. 프로크루테스는 희랍 신으로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잡아다 자기 침대에 뉘워놓고 손이 길면 손을 자르고 다리가 길면 다리를 늘리는 고문을 감행한다. 타인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감정과 욕구에 따라 타인을 재단하고, 틀에 맞지 않으면 잘라내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모두 프로크루테스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시대는 디지털 알고리즘이 프로크루테스다. 알고리즘은 디지털 시대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춰 디지털 모범시민(일반화된 타자)이라는 침대를 만들어 놓고 이 침대에 맞춰 연기하며 살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침대에 뉘어진 사람들도 가끔은 의식이 깨어나 질문을 던진다.

“이게 정말 나일까?”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이지?"

하지만 그 물음은 알고리즘의 에이전시인 SNS 알림과 업무 메일에 묻혀 사라진다.

요시다케 신스케의 그림책 속 아이는 최소한 자아에 대해 궁금해한다. 하지만 어른은 그 궁금증마저 잃어버렸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다들 이렇게 살아.”

“이게 어른이 된다는 거지.”

우리의 진짜 자아는 우리 몸을 탈출해 집을 나갔다. 원래 우리가 하고 싶던 말, 좋아하던 것, 느꼈던 감정들은 장기 미아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디지털 알고리즘이 조형한 자아일 뿐이다. 매일 무언가를 소비하고 반응하지만, 진짜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이게 정말 나일까?』는 아이의 눈을 통해 초뷰카 시대를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자기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스크롤 대신 거울을, 콘텐츠 대신 질문을 던지지 못하면

정체성은 영원히 집으로 돌아올지 못할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좋아요, 오늘도 맛 있는 음식을 먹었어요, 행복했어요를 외치며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디지털 노예이자 식물인간의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프로크루테스의 명에 따라‘더 나은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잠시 ‘다시 아이’가 되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게 정말 나일까?”

"나는 어디서부터 길을 잃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