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우리에게는 최초의 기독교(천주교)인 중 한 명으로 생각한다. 정약용이 성리학의 알에서 깨어나도록 즐탁동시 해준 것은 그 당시 이입된 기독교 철학이었다. 정약용은 천주에 대한 사상을 씨줄로 받아들여 당시 학문적 토대였던 성리학에 날줄로 걸어 자신만의 고유한 학문적 태피스트리(다산학)를 완성했다.
정약용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통해 천주교 사상을 접했고, 한때 세례명 ‘요한(John)’으로 신앙생활을 할 만큼 깊이 기독교에 매료되어 있었다. 요한은 타고난 긍휼의 마음 때문에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12제자 중 한명이다. 죽음을 앞 둔 예수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한 제자다. 요한 정약용은 박해 때문에 결국 배교했지만 기독교의 사상적 각성은 이후 집대성된 그의 모든 저술에 고스란히 배태되어 있다. 요한 정약용은 유교의 민본과 기독교의 ‘천주’를 동시에 의식하며, 평생을 ‘도덕적 인간’, ‘정의로운 공동체’, ‘사랑과 긍휼의 정치’를 고민했다.
“백성을 사랑하라. 그것은 곧 하늘을 섬기는 길이다.”
그가 남긴 수백 권의 저술에는 조선사회의 모순을 넘어,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과 정의에 이르는 통찰이 담겨 있다. 이 사상의 근간은 유교 성리학의 전통 위에 서학(기독교 철학)을 결합해 직조한 동서 사상을 포괄하는 융합적 태피스트리의 정수라고 정의할 수 있다.
『목민심서』는 지방관이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백성에 대한 긍휼의 사랑 즉 ‘애민(愛民)’이다. 요한 정약용의 애민은 단순한 유교적 민본주의를 넘어선다. 정약용은 백성을 자신의 몸처럼 여기라고 반복하여 강조한다. 이는 기독교의 자신의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규범이 이입된 것이다.
또한 『목민심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백성의 생명을 존중하고, 정의와 공의를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평등과 정의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의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나아가 실천 중심의 윤리관 역시, 신앙을 삶으로 실현하려는 기독교적 자세와 깊이 호응한다.
형사 재판 지침서인 『흠흠신서』는 요한 정약용에게 솔로몬 급의 지혜가 있는 현자였음을 증명한 책이다. 법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살리기 위해 수단으로 존재해야 하며 생명의 존엄성 위에 목적으로 군림할 수 었다고 설명한다. 정약용은 솔로몬처럼 억울한 사형 판결을 극도로 경계하며, 진실에 대한 집요한 추구를 강조한다. 고문 자백을 지양하고, 증거에 기반한 공정한 재판을 중시한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다.
기독교의 공의(Justice)를 실현하는 일도 인간적인 긍휼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법의 집행조차 인간으로서 가지는 아픔에 대한 긍휼로 감싸야 한다는 기독교 신앙의 반영이다.
『경세유표』: 하늘의 뜻을 좇는 제도 개혁의 청사진
국가 운영 전반의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는 정약용의 제도적 이상이 집약된 작품이다. 그는 탐욕과 부패를 사회 병폐의 근원으로 보고, 공정한 분배와 정의로운 통치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이때 핵심이 되는 원리는 단순한 합리주의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다.
흥미롭게도, 이 ‘하늘’은 성리학의 ‘천명’과 동시에 기독교의 ‘천주’의 개념과 교차한다. 통치자는 사사로운 욕망이 아니라 절대적 정의, 곧 하늘(혹은 하느님)의 의지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기독교 공의로운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내포하고 있다.
정약용의 사유는 유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어느 하나에 완전히 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성리학의 체계성과 도덕 윤리를 날줄로 삼고, 기독교의 보편적 사랑과 정의의 정신을 씨줄로 삼아, 하나의 웅장한 사상적 태피스트리를 엮어냈다.
요한 정약용이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에 남긴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인간 존중, 공동체 정의, 책임 있는 권력 행사의 이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요한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물러나지 않고 사유하고 기록하며, 현실의 어둠 속에 새로운 빛을 제시했다. 요한 정약용의 철학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을 위한 ‘살아 있는 신앙’이자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이번에 정권이 성공적으로 바뀌면 대한민국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정약용을 다시 읽고 부활시키는 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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