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生命)이란 한자 뜻대로 명 즉 자신의 존재이유를 살려내는 활동을 의미한다. 식물인간인 상태로 명(숨)이 붙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존재이유를 살려내는 활동이 끝나지 않았다는 생물학적 생존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존재이유를 구현하는 생명 활동에 적극 몰입하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란 자신의 명 즉 존재이유를 실현시키는 활동을 통해 자신이 춤출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생명이 끊어지는 과정의 시작은 우상화이다. 우상화는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우상화와 돈, 명예, 권력 등 물건을 대상으로 한 우상화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우상화는 우상화한 대상이 살아 있는 한 생존할 개연성도 있지만 결국은 무너진다. 우상화한 대상을 빼고 모든 사람들이 이 우상화한 대상에 의존성이 심화되는 어린이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상화한 어른과 여기에 종속된 아이들의 집단도 당분간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결국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는 우상을 중심으로 모인 집단은 집단사고에 말려들어 무너진다. 집단사고로 무너지지 않아도 어느 순간에는 세상으로부터의 소통과 지원이 끊겨서 소금기둥으로 전락한다.

돈, 권력, 명예를 우상화한 경우는 화석화(Reification)을 초래한다. 화석화란 사람의 정신이 물건에 고착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생명이 고사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석화의 예는 이중섭과 소그림의 경우다. 살아 있는 이중섭의 영혼은 소그림에 투영되어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는 순간 이중섭은 소로 동일시되고 살아 있는 생명인 인간 이중섭은 사라진다. 전원일기에 복길이 역할을 오랫동안 김지영씨는 극중의 복길이의 이미지에 갇혀서 다른 연기에 출연제의를 받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연예인을 살아 있는 인간 김지영으로 보지 않고 복길이로만 보는 화석화 과정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돈, 명예, 권력도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강력하게 화석화 시키는 주범이다.

사람에 대한 우상화이던 물건에 대한 우상화이던 우상화는 사막화로 진행된다. 우상화한 사람이나 우상화한 권력, 명예, 돈이 태양처럼 떠서 화석화된 삶을 잘게 분절시켜가며 사막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희곡 《오 행복한 날들》엔 50대 아내 위니와 60대 남편 윌리가 나온다. 1막에서 위니는 허리까지 모래 속에 파묻혀 있고 2막에서는 목까지 묻혀 있다. 위니는 결국 모래 속에 파묻혀 생명을 마감할 운명이다. 극중 간간히 남편이 왔다 갔다 하지만 둘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다. 모래에 파묻혀 죽어가는 와중에도 위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을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의미 없는 대사를 쏟아놓는다.

모래는 그녀가 평생을 통해 축적해놓은 재산과 욕망의 상징이다. 위니는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운다. “오늘은 행복한 날이 될 거예요. 오늘은 행복했어요.” 죽는 순간까지 그녀는 주문처럼 자신에게 “오늘도 행복했어요.”라고 외치지만 그녀에게 행복은 신기루다. 그녀는 평생을 쌓아온 부와 욕망의 모래 구덩이에서 서서히 죽는다. 이 희극은 돈‧명예‧권력 등 신기루와 같은 행복을 추구하다 서서히 죽음을 당하는 현대인들의 비극을 풍자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목적에 투자해 실제로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는 항해를 목적으로 설정하고 배를 만들거나,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리더로 가득한 사회를 꿈꿔가며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생물의 기원을 찾을 목적으로 사막에서 공룡의 알을 찾아 나설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목적을 지향하며 수행한 일과 그 일을 통해 얻어낸 변화의 체험이 진정한 행복의 기원이다. 또한 이 신성한 여정을 지지해주거나 동행해주는 도반들이 있다면 행복은 더욱 커질 것이다. 목적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행복을 체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