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지프스 돌굴리기 삶을 벗어날 수 없을까?
삶의 목적함수의 비밀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 석공의 이야기에 담겨있다.
세 명의 석공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궁금해서 각 석공들에게 물어본다.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왔어요.”
“틈만 나면 도망갈 겁니다.”
“일당 5만 원짜리 일을 하고 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해요.”
셋째 석공은 앞의 두 석공과 달리 환한 웃음을 지어가며 정말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석공의 대답은 다르다.
“일개 석공이어서 잘은 모르지만 성당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당이 성공적으로 복원되어서 믿음을 잃었던 사람들이 성당에 와서 믿음을 찾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내가 하는 일이 일개 석공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석공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을 통해 실현하려는 목적함수는 다르다. 열심히 일하는 이들간 결과적 차이를 만드는 것은 이들이 운용하고 있는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이다. 목적함수는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어하는 상태가 종속변수이고 지금 열심히 일해가며 시도하고 있는 상태가 독립변수이다.
첫째 석공이 실현하려는 목적함수는 일 안하고 편하게 쉬고 놀 수 있는 헤도니아(쾌락) 상태이고, 이 최종 상태를 실현하기 위한 독립 변수가 상황이 허락되면 일에서 도망쳐 소확행을 외쳐가며 여행도 다니고 맛집이나 찾아다니는 것이다. 처음의 소확행 체험은 신선했지만 차츰 소확행은 진부해지고 점점 더 자극적인 대확행을 찾아나서는 시지프스의 삶에 빠진다.
둘째 석공의 목적함수는 생계에 걱정이 없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부가 생계문제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일으켜 일당 오만원짜리 일을 하지만 돈은 축적되지 않고 밑빠진 독이 되어 사라진다. 매일이 기진맥진해지는 쳇바퀴다.
셋째 석공의 목적함수의 종속변수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신 삶의 존재이유인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당을 재건하는 석공으로서의 전문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석공이 첫째 석공의 쾌락이나 둘째 석공의 생계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셋째 석공은 자신의 목적함수가 실현되면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생계를 위한 돈이 목적함수 실현과 동시에 긍정적으로 피드백되어 자신 목적함수의 상수로 장착된다는 비밀을 안다. 결과가 긍정적으로 피드백 되어 상수를 변경되지 못하면 시지프스의 돌굴리기 순환루프에 빠진다는 비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존재목적을 결과변수로 설정해서 이것을 최적화 시키지 못하는 최적화는 부분최적화된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분 최적화의 형벌은 순환루프의 함정이다. 부분 최적화된 목적함수를 실현시키는 사람들은 순환루프의 함정에 빠져 아무리 열심히 땀흘리고 밤낮없이 일해도 시지프스의 돌굴리기 형벌을 벗어나지 못한다.
존재목적을 결과변수로 설정한 전체 최적화된 목적함수를 실현시키는 사람들이 삶의 번성을 구가하는 이유는 제대로 설정된 목적함수가 돈과 쾌락을 따라오게 하고 이런 선순환의 반복이 목적함수의 상수를 올려 세운다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이런 목적을 결과변수로 장착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회사를 비난하지만, 회사의 목적이 산성화 되어 있어도 어떤 목적함수를 선정해서 직장을 다니는지의 문제는 개인이 선택하는 문제이다.
회사가 목적을 잃은 회사여서 다른 동료들은 첫째나 둘째 석공과 같은 목적함수를 택하는 삶을 당연하게 생각해도 셋째 석공과 같은 목적함수를 회사 몰래 조용하게 설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할 경우 장기적 성과에서 이들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회사가 산성화되어 있을수록 셋째 석공처럼 목적함수를 설정해서 실현시키는 사람은 리더로 거듭날 수 있는 무주공산을 만난 것이다.
이들은 조용한 혁명가들이다. 자신의 목적함수를 자랑해가며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들은 회사와 동료들의 산성화된 바위에 자신을 계란으로 희생시키는 전략을 극도로 경계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시작해서 조용조용히 목적함수의 적용범위를 넓혀갈 뿐이다. 진성리더십에서는 이런 전략을 급진적 거북이 전략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알려져 있던 있지 못하던 한 두 사람이라도 경업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회사는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인 경업낙군(敬業樂群)이라는 최종적 상태를 만들 수 없다. 경업락군은 구성원 중 20% 이상이 존재목적을 찾아서 일을 하고 있을 경우 회사자체가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가 문화로 굳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 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경업락군은 영어로 collective optimism (집단적 낙관)이다. Optimism(낙관)의 어원은 Optimization(최적화)과 같다. 경영락군에서 낙군은 회사의 목적함수가 제대로 설정되어 실행되는 집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양된 체험이다.
단기적 성과를 아무리 어렵게 내도 이것이 장기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회사도 존재목적을 집단적 목적함수의 결과변수로 세워 전체 최적화 시키는 경업락군의 조건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재목적이 결과변수로 세워지지 못하고 경제적 성과와 경쟁우위가 결과변수로 세워질 경우 이 회사는 영원히 부분 최적화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분최적화된 목적함수는 우리가 함수 속에서 잡아낼 수 없는 많은 과정손실을 초래한다.
회사가 설정한 장기성과라는 독의 밑이 깨진 상태가 되는 것도 잘못 설정된 목적함수 때문이다. 잘못 설정된 목적함수에 따라 구성원은 어렵게 단기적 성과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나 단지 생계의 수준만을 간신히 채울 뿐이다. 이런 회사일수록 회사는 구성원들에게 돈과 복지를 앞세워 열심히 일하도록 확성기를 틀어대지만 구성원들은 매일 매일 회사 출근하기도 힘들 정도로 기직맥진해지는 운명이다. 어느 날은 일어날 수 없어서 아마도 회사에 출근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잘못 설정된 목적함수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보니 어느 순간 기진맥진해져 더 이상 열심히 일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잘못 설정된 목적함수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기도하고,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고,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가가 아무리 구두창이 닳도록 열심히 일해도 잘못 설정된 목적함수는 애꿎은 국민들만 시지프스 돌굴리기를 시킬 뿐이다.
개인, 조직, 사회 심지어는 나라가 존재목적을 잃고 목적함수가 잘못 설정되어 부분최적화의 순환루프에 빠질 것이 분명하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생고생에 동원될 것임에도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없다.
ps: 구글 등에서 실험하고 있는 OKR(Objective Key Results)라는 것도 조직의 존재목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것을 임팩트 있게 실현시켜 직접적 개입에 도움이 되는 조치들을 독립변수로 설정해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목적함수자체를 바꾸는 운동이다. 경쟁우위와 단기적 성과라는 KPI의 부분최적화의 순환루프에서 벗어나 존재목적을 종속변수로 부분최적화 모형에서 결과변수였던 경쟁우위와 단기적 성과를 독립변수로 설정해서 회사를 경영하겠다는 전체 최적화를 위한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