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초반이었을 때 내 친구의 이야기다. 미국 유명대학교에서 박사를 마치고 전도양양한 인재가 되어 귀국했다. 한 대학에 전임으로 지원한다.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첫 단추였다. 자신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마지막 총장 면접에 들어가서 탈락했다. 불같던 성격을 가지고 있던 친구는 학과에 찾아가서 선배교수들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거칠게 항의했다. 자신이 명백히 경쟁자보다 연구점수가 더 높은데 왜 탈락시켰는지 따져 물었다. 과에 큰 회오리 바람이 불었다. 그 사건이후로 이 친구의 운명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뛰어난 연구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 친구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모든 대학에서 기피대상이 되었다. 이 친구는 늦은 나이까지 시간강사로 전전하다 작은 정부출연 연구원에 어렵게 취업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았다. 최근에 가르쳤던 한 제자가 3-4달 후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 제자의 전화가 능력이 출중했음에도 불운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냈다. 제자에게 남은 3-4달 동안 지금 있는 회사에서 좋은 관계로 마무리하는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도록 조언했다. 소원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서 사과하라고 부탁했다. 지금은 회사와 회사를 옮겨가며 자신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전문성과 회복탄력성이 있는 경력(Resilient Career)을 개척해가는 무경계 경력(Boundaryless Career)의 시대이다. 무경계 경력은 회사와 회사를 옮겨가며 자신의 경력의 목걸이를 스스로가 꿰어가는 과정이다. 내 친구의 경우처럼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고칠 방법이 없다. 결국 자신의 경력과 무관한 영역에서 첫 단추를 다시 시작해야한다. 무경계 경력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켓벨류에 맞는 전문성과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이 필수적이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 필수적인 것이 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의 평판이다. 아쉽게도 급격히 성장하는 회사에서 직급자를 충원하는데 급한 마음에 평판을 점검하지 못하고 전문성만 보고 충원하여 회사 성장에 큰 부담을 지운다. 이렇게 충원된 사람도 결국 급한 프로젝트가 끊나면 대부분 토사구팽된다. 평판을 챙기지 못한다면 회사나 이직자 모두에게 불행의 연속이다. 직급이 높을수록 평판이 중요한 이유는 회사의 모든 가치 있는 일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같이 협업으로 일하는 구조이고 직급이 높아질 수록 협업의 범위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한 회사 HR에 이런 무경계 경력을 열망하는 MZ 세대들을 위해 <동료에 의한 해고 실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보도록 제안했다. 동료 책무성 실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상상적 실험은 다음과 같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른 프로젝트가 생성될 때 동료들이 자신을 다시 협업의 파트너로 초대할 것인지를 상상적으로 평가해보는방식이다. 이 실험결과 동료로 초대받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동료들에 의해서 해고당한 것으로 본다. 해고당한 사람은 자신이 다시 고용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협업해야 해야되는지를 점검해보고 이를 개선해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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