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나 기업은 다른 사람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카피하는 것을 통해서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고차원의 학습은 과감하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실수를 해보고 이 실수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지도인 정신모형을 고쳐나가는 것을 통해서 이뤄진다.
실수란 자신이 인식하는 세상과 세상이 인식하는 자신 간에 얼라인먼트가 끊어져 있다는 것을 전달해주는 가장 중요한 학습정보이다. 실수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점을 고치지 않는 한 세상과 나와의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지고 나의 스토리는 세상에 대해 전혀 공명을 창조하지 못한다. 내 스토리가 세상에 공명을 창조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나의 성공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 세상으로 부터 서서히 고립되고 퇴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실수조차도 감추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리더나 회사가 있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실수를 자복하지 않고 감추다 나중에 사람들에 의해 털려나오는 회사나 리더가 아무리 성공을 위해서 몸부림쳐도 세상은 이들을 심정적으로 지지해주지 않는다. 또한 사회는 SNS의 발달과 초연결사회로 진행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집단적으로 어떤 정보도 털어낼 수 있는 비밀을 감추기 힘든 사회로 이미 전환되었다.
뱀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허물을 벗는 과정에 성공해야만 하는 원리 처럼 자복과 용서받음은 성장과 학습을 위해서 허물을 벗어내는 필연적 행동이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자복하고 용서받은 사람이나 회사에게 세상은 항상 관대해 또 다른 학습기회를 부여하지만 숨기고 변명하다 털려나온 사람들들을 동정하지는 않는다.
록펠러와 카네기도 젊었을 때는 최고의 악덕 기업주였다. 하지만 지금 누구도 이들을 악덕기업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미숙했던 청년기를 스스로 자복해서 용서 받았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들은 더 훌륭한 사람으로 성숙해져서 과거의 미숙했던 자아를 구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자복과 용서받음을 통한 고차원의 학습원리는 스스로 자복해서 용서받은 독일과 지금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국가 차원의 문제이기도하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논란의 핵심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과거의 실수에 대한 자복과 용서받음을 통해 고차원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자기 변명과 방어는 순간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주지만 벗어던져야 할 허물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고차원적으로 학습하고 성숙해나가야 할 자신을 가두는 감옥으로 자라난다.
존경받는 리더란 학습하는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