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남기신 악보는 저희가 연주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강한 사상적 영향을 끼쳐오신 신영복선생님이 타계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한동안 말문을 잃었다.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린 학생들과의 주기적 만남을 소재로한 <청구회의 추억(2008)>을 통해서였다. 이 이야기는 실화로 선생님과 한 무리의 소년들과의 주기적 만남을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 철권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통혁당 사건의 사형수로 감옥에 투옥된지도 모르고 선생님과의 만남에 기분이 들떠 있던 어린 소년들, 드디어 약속 날자가 되어 선생님을 만나러 가지만 결국 선생님의 소식을 모른채 황망하게 기다리다 지쳐 돌아간다. 나는 소년들 이야기에서 시대의 어른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소소한 교류를 가로막는 시대의 비극과 폭력의 문제를 놓치고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과연 이 역사적 비극이 일상으로 치닫는 이 현장에서 나는 도대체 앞으로 리더로 성장할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질문은 내 학자적 정체성의 중심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내가 연구하는 경영학 영역이 인문학과는 너무 동 떨어져 있어서 선생님을 직접 만나뵐 기회는 없 었지만 선생님과의 책을 통한 만남은 내가 한국에서 진성리더십을 사상적으로 정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리더와 구성원들 서로의 머리와 가슴과 다리가 존재론적 관계론적 실천론적 집단지성적으로 연결될 때에만 세상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는 진성리더십의 원리는 신영복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정교화 될 수있었다. 다양성을 기반으로한 변방으로부터의 변화에 대한 생각은 내가 제안한 <백년기업의 변화혁신의 문화적 유전자 이론>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신영복선생님의 즐겨 암송하시던 지남철이라는 시는 진성리더십의 핵심인 진북의 개념을,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아추는 것이라는 궁훌감에 대한 깨달음, 감옥을 대학으로 생각하신 프레이밍은 진성리더의 학습하는 죄인의 개념을, 석과불식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진성리더십에서 공진화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20년간의 감옥에서의 자신과의 성찰적 대화가 깊은 뿌리가 되어 이렇게 큰 열매를 맺었다는 생각은 학자로서 학문하는 옭바른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은 비록 세상을 떠나셨지만 선생님이 남겨 놓으신 삶의 악보는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의 삶에 변주곡으로 살아서 오랫동안 연주될 것이다. 이 연주가 계속되는한 선생님은 우리의 몸과 영혼 속에 살아서 영생을 획득하신 것일 것이다.
이제는 고난한 역사의 짐을 저희에게 맡기시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윤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