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26 07:31
[N.Learning] 평등을 넘어 다양성이 상식인 사회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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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을 넘어 다양성이 상식인 사회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Executive Summary IV
우리가 먼저 주에 출간한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의 부재는 초연결 디지털 시대 성 다양성의 내러티브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성 평등이라는 용어가 아닌 성 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평등이 시작하는 조건으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다양성 사회로 향하는 문제해결의 시작점이지 절대로 결론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성평등이 제도화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여성과 남성의 직업분포를 보면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직업군으로 분류되어 왔던 선생님, 돌봄 서비스, 공무원 등의 직업으로의 고착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심각하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성평등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성평등을 제도화시킨 결과 직업군에서의 남녀 간 불평등이 심화되는 역설이 더 가시화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성평등을 제도화시키는 노력이 가시화되자 기업에서 여성인력은 증가했으나 역설적으로 이런 증가한 여성인력에 비해 전략적 파트너의 자리를 점유하는 여성의 비율은 점점 고착되어가고 있다.
성평등의 역설이 가진 한계는 다음과 같은 비유에서 잘 드러난다. 사회가 여성을 수영장에 데리고 와서 수영장에 집어 넣고 지금부터는 너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었으니 수영을 배워서 네가 살아나오던지 거기서 빠져 죽던지는 당신 문제이다라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수영장은 이전에는 남성전용이었으나 지금은 남성과 여성이 같이 수영할 수 있는 제도다. 이전에는 여성들을 수영장에 데리고 와서 수영선수를 만드는 일도 없었으나 여성들도 선수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면 물에 뛰어들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제도로 허락한 것이다.
남성들은 수영장에 데리고 오기전에 코치가 붙어서 수영연습을 충분히 시킨다음 수영장에 넣어주는데 여성들은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결국 수영을 통해 앞으로 나아지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가 다시 물밖으로 나오는 형국이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물에 같이 들어가 있지만 제대로 된 수영선수로 길러지는지는 여성의 자신의 문제이지 사회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사회적 지위는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사회의 공진화 시키는 미래를 만드는데 실제 얼마나 공헌했는지가 평가되어 분배되어 만들어진다. 지금 시대에 실제로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은 의사나 변호사나 공무원이 아니라 STEM 분야, 디지털 분야, 혹은 미래를 선도하는 초우량기업에서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분야에서 여성들이 남성들과 협업으로 미래를 창출하는 것에 가시적 성과가 없다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은 구호에 그친다. 여성들을 이런 수영장에 데리고 와서 남성과 평등하게 집어넣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평등은 여성으로서의 최소한의 지위를 못누리는 여성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미래 사회를 공진화시키는데 기여해서 여성들이 제대로된 지위를 획득하게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평등의 문제를 미래 창출을 위한 다양성의 문제와 혼동한다면 오히려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요소가 될 수도 있다.
달달 법조문을 외우거나 신체구조를 외워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 것을 넘어서는 여성들이 많아져야 성평등의 문제가 사라진다. STEM이나 디지털이나 기업 등 미래 영역에서 남성들과 협업해서 실질적으로 미래를 만드는 진취적 여성들이 충분히 많아져 이들 여성 역할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유리천정은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전통적 여성의 역할에서 의사와 변호사와 공무원으로 정착하는 것을 뛰어넘는 여성들이 많아 질 때 진정한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적 이야기가 된다. 여성들이 미래 영역에서 실질적 기여하는 모습을 보일 때 성평등을 넘어 미래를 위한 성 다양성의 물꼬도 트인다. 이런 검증된 여성들이 많아질 때 유리천장은 옛날 이야기가 된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남을 목격할 때 이들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나 형평에 관한 이야기를 신화적 이야기로 치부한다 .
공정성은 지금 정부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공정성 그 자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한쪽의 두더지를 잡으면 다른 두더지가 나타나는 두더지 잡기로 전락할 뿐이다. 공정성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미래를 개척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를 해주고 이들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미래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을 때 사라진다. 공정성 문제가 진취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다양성의 운동장을 건설해 미래를 개척하는 문제를 가시적으로 해결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의 저서에서 이런 다양성을 통한 미래를 개척하는 일에 여성들이 나서서 재능있는 소수자의 아픔을 해결해줄 것을 요구했다.
남여평등이나 성 공정성이 사라진 사회는 미래를 창출하는 일에 기여한 사람들의 숫자를 세봤더니 우연히도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비슷해졌을 때이다. 여성을 전략적 파트너로 육성한다는 것은 사회의 미래를 공진화하는 일에 파트너로 육성하는 것을 의미하지 남성의 파트너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조직에서 남성의 파트너가 되었어도 기업의 미래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여성의 전략적 파트너의 지위은 요원한 문제다.
시대는 바야흐로 초연결 디지털 시대로 흐르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진전으로 AI나 로봇의 진화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사회적 범주가 주던 제약의 상당부분을 해체했다. 차이를 해체하는 가능성 측면에서는 이미 해체되었음에도 아직도 남성과 여성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이런 범주적 감옥을 지어놓고 스스로를 탈주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