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8-19 13:44
[N.Learning] 현대판 오병이어 플랫폼 기적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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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오병이어
플랫폼 기적
예수가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날도 늦었고 하니 사람들을 돌려보내서 뭐라도 좀 먹이자고 제안했다. 이때 예수는 어린이가 가져온 빵 다섯 조각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행한다.
여러 해석이 존재하겠지만 식당도 없는 갈릴래아 호수가에서 모임이 행해졌기 때문에 아마도 오천명의 군중 중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몇 일분의 먹을 것은 가지고 따라 왔을 것이다. 이들이 이미 예수의 긍휼과 사랑을 설파하는 설교에 심취되어 운집한 이웃을 사랑을 나눈 형제 자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가져온 빵과 물고기를 남을 위해 나눠주라는 메시지를 읽고 자신들이 감춰 두었던 빵과 먹을 것을 남들에게 기꺼히 나눠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랑의 이름으로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라는 메시지가 이들 군중의 마음 속에 이입되어 상황이 맥락으로 바뀐 것이다. 맥락은 상황 속에 리더의 의도가 삽입되어 상황이 새롭게 해석되어 의미있게 다시 구성된 세상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이 만들어지자 자신의 것을 나누는 행동이 촉발되었고 이 나눔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모든 군중에게 전염되었을 것이다.
예수는 <기적>은 항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전해지고 관계를 통해 찾아온다는 것을 설파했다. 사람들간 진실한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사랑과 긍휼이다. 군중들 사이에 사랑과 긍휼감으로 잉태된 관계가 없었다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선의의 관계를 기반으로 생성되는 현대판 오병이어를 잘 묘사하는 실화 영화가 #LittleBoy 다. 영화의 스토리는 8살 짜리 소년의 이야기이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아 놀림감이 되고 있는 주인공은 믿음이 좋은 소년이다. 2차 세계 대전에 발발하자 사랑하는 아버지가 평발인 형 대신에 징집되어 전쟁터로 떠났다. 소년은 아버지를 빨리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기적을 찾아 나선다. 아버지를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전쟁이 빨리 끝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전쟁이 빨리 끝나게 하는 기적을 간구하다가 뭐든지 간절하게 바라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사기꾼 마술사의 말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한다. 자신 또래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단순히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놀리자 자신이 믿고 따르는 신부님을 찾아가 고충을 털어 놓는다.
이때 이 신부님은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이뤄지는 원리를 아주 쉽게 설명한다.
기적을 보여줄테니 아이에게 테이블에 있는 물병을 옮기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보라고 주문한다. 아이가 이 말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자 신부님은 기다렸다가 자신이 물병을 옮겨 놓는다. 아이가 신부님이 물병을 옮기는 것을 목격하고 문제를 제기하자 신부님이 기적의 원리를 설명한다. 기적은 자신 혼자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때 이들의 마음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이의 간절한 기도가 신부님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물병을 옮겨 놨다고 고백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가 이끄는 세상에서 성공의 기준은 오천명 분의 식량을 남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 혼자 다 차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신자유주의 생각에 경도되어 세상은 소수를 제외한 모두가 피를 흘리고 있는 양극화 지옥으로 전락했다. 피터지는 싸움터로 전락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메시지가 한 사람이 오천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세상은 초연결 디지털 플랫폼의 세상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연결되어 서로의 생존을 위해 의존해가는 정도가 심화되는 세상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존성이 심화되는 세상에서의 성공 기준도 바뀌고 있다. 실제로 TED에 출연한 사람들에게 성공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들 대다수는 성공에 대해서 우리가 알던 정의와 다른 정의를 이야기했다. 이들은 초연결 디지털 플랫폼 시대 성공은 <남들의 성공을 돕는 일에 크게 성공하는 것으로 성공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TED에 출연했다는 것은 현대적으로 가장 시의적절한 성공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남들과 경쟁해서 오천명분의 식량을 빼앗아서 혼자 독식하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오천명의 사람이 나때문에 성공할 수 있게 만드는 예수가 오래전에 설파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제대로 된 성공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몇 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지 몰라도 오천명을 성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가진 것이 많은 국가조차도 단순히 나눠주는 복지방식으로는 가난을 구제하지 못한다.
비밀은 플랫폼이다.
예수의 설교에 감화받아서 모인 청중들도 플랫폼이었다. 플랫폼을 어렵게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플랫폼이란 네트워크에 공동운명의 울타리가 둘러져서 많은 사람이 이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런 플랫폼은 여기저기 삶에 편재해 있다.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이 네트워크 위에 어떤 울타리를 둘러주는지에 따라 플랫폼이 결정된다. 의미 있는 울타리가 둘러진다면 회사의 사장님들에게도 회사는 플랫폼이 된다. 팀장들도 팀이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제대로된 의미 있는 울타리만 있다면 가장에게는 가족이, 목회자에게는 교회가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회사, 팀, 가족, 교회를 플랫폼으로 생각하다는 것은 나 개인의 성공을 위해 다른 구성원들 모두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 울타리를 가진 플랫폼을 이용해 구성원들의 성공을 돕는 일에 성공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내가 구축하고 운영하는 플랫폼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이들 성공한 사람들이 조금씩만 나에게 돌려주어도 나는 큰 부자가 되는 원리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오병이어다. 학자들은 이런 작은 기적들이 더해져서 오병이어 기적을 만드는 효과를 공식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네트워크 효과는 성공에 대한 합산이 아니라 곱하기 원리를 지칭한다.
플랫폼의 골격인 네트워크는 제대로 된 울타리가 존재할 때 다양한 사람들이 이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고 이 차이를 이용하기 위해 서로 접속하고 연결해서 십자형의 태피스트리로 만들어진다. 이 태피스트리가 제대로 된 울타리가 둘러진 플랫폼의 프랙탈이다. 진짜 플랫폼을 들여다보면 이 플랫폼 속에는 오래전에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을 날줄로 삼아 자신의 씨줄을 결합시킨 태피스트리의 주인공들이 있었다. 시작은 미천하지만 끝이 창대한 기적을 추적해가면 항상 시작하는 시점에 아무도 안 알아줌에도 자신이 찾아낸 목적의 씨줄을 가지고 사람들의 상식을 날줄로 엮어서 태피스트리를 만든 사람이 있었다.
이런 점을 지적하며 아인쉬타인은 세상이 더 좋게 변화하는 것은 다 기적이지만 이 기적을 기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과 기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대립해가며 싸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당장 창대한 기적을 기대하고 목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현상적 기적이지만 이 시발자가 없었다면 기적도 없었다는 점에서 모든 기적은 이 시발자의 시점에서는 필연적 기적이다. 아인쉬타인은 어린이들에게 이 기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꼬리가 서울에 있고 머리는 부산에 있는 남한 크기만한 큰 개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부산사람들은 이 개가 짖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사람이 이 개를 알아보지 못하고 꼬리를 밟으면 부산에 있는 개가 짖을 것이다. 개가 짖기를 바랬던 부산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를 것이다. 아인쉬타인은 이런 비유를 들어가며 세상의 모든 기적은 누구가가 오래 전에 씨앗을 뿌렸는데 여기에 연결된 많은 사람들이 협업으로 이 씨앗을 가꿔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기적은 자신이 발견한 목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상실을 초월하려는 누군가가 존재했고 이 사람의 목적에 대한 약속에서 믿음의 실체를 본 주변인들이 같이 태피스트리를 실제로 만들었다. 이 만들어진 태피스트리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타고 더 큰 테피스트리 만들어진 것이 플랫폼이다. 광화문 촛불도 추적해보면 오래 전에 이런 태피스트리를 만들어간 무명인들의 시도가 씨앗으로 뿌려져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누리고 있는 오늘도 따지고 보면 먼 옛날 더 나은 미래를 간절하게 갈망하는 시인들과 몽상가들이 모여 씨줄과 날줄로 태피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협업한 결과이다.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나눠놓고 싸우는 사람들은 이런 플랫폼 기적의 적들이다. 여성과 남성, MZ와 X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지금처럼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서로를 힘으로 제압하려 시도하기보다는 공동운명이 걸린 미래를 염두에 두고 씨줄과 날줄로 태피스트리를 만들어가는 협업의 시각이 복원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 플랫폼 노동자를 양산해내고 있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중계구전으로 생존하는 플랫폼은 플랫폼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제대로 된 플랫폼이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울타리가 있는 운동장이다. 이들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의 탈을 쓰고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맹신자들일 뿐이다.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또 다른 양극화다. 이들 유사 플랫폼을 넘어서는 진짜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 기업의 과제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런 든실한 플랫폼들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의 성공을 도와주는 강의실도 내 플랫폼이고, 내 글을 꼼꼼히 읽어주는 페북의 페친들도, 직장인들에게 행하는 세미나 장면도 플랫폼이다. 모든 도반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진성리더십 아카데미도 중요한 플랫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