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1-07 21:06
[N.Learning] 우리는 어떤 인간인가: 생계형, 시시포스형, 석공형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44  

생계형 인간, 시지포스 인간, 온전한 인간
우리는 어떤 인간인가?
변화와 위기가 상수가 된 초뷰카시대를 묘사하는 용어로 영국 콜린스 사전은 영구적 위기를 뜻하는 Permacrisis(Permanent + crisis를 올해의 신조어로 선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위기,코로나 위기, 에너지 위기, 물가대란, 물류위기, 영구적으로 침체된 경기 등을 반영하는 신조어다.
온전성이란 경제의 무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신자유주의 기조가 꺾기고 영구위기인 L자형 장기침체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여기에 더불어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 되자 글로벌 선진기업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정한 HR의 새로운 기조다. 온정성이란 지금 시대가 더 이상 분절된 상태를 전제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부분들을 모아 온전한 전체로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시대적 고통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있다는 제안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직원들에게 분절과 효율성을 요구했다. 따라서 종업원의 정신은 회사 문 밖에 걸어놓고 오고 회사 안에는 몸만 가지고 들어와서 시키는 대로 일하라고 주문했다. 경기가 좋아서 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의 유일한 장애는 목표로 답이 정해져 있는데 다른 생각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직원들이 제기하는 이견과 갈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요구된대로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목표대로 달리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긴 직원들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평가해서 가차없이 해고하는 것이 규범이었다. 답은 정해져 있고 일사분란하게 시키는대로 뛰기만 하는 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직원들은 모두 몸만 큰 어린이로 변모했다.
L자 불경기가 기조가 되자 경제에 대한 답이 사라지고 답을 찾아내서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들이 선두기업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전개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의 일상화로 9 to 5로 8시간 제대로 일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디지털 혁명의 가속화로 Business Analytics가 의사결정을 대체해서 회사의 중간층을 달성하던 관리자들이 해고가 시작되었다. 코로나가 안정국면에 들어와서 회사로 출근해서 일하는 기조가 다시 살아나자 신자유주의의 철학으로 직원들을 어린이 취급하는 회사에 식상한 MZ세대의 대사직(The Resignation)이 시작되었다. 사직서를 낼 수 없는 직원들은 떠나는 직원들을 보고 사직서를 내지는 못하지만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일상화했고, 회사에서는 이들의 행태에 대응하기 위한 조용한 해고(Quiet Firing)라는 제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대사직, 조용한 이직, 조용한 해고는 모두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만들어진 일사분란한 피라미드 구조의 문화에 대한 반란이다. 회사에서도 이런 기조를 읽고 On Boarding 프로그램으로 MZ세대가 회사에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종업원 체험을 만들어내지만 신자유주의 거버넌스가 문화철학의 중심으로 작용하는 조건에서는 온보딩 프로그램은 모두 디커플링으로 끝난다.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개념이 온전한 자신에 대한 심리적 개약이다. 초뷰카시대 시대적 돌파구를 제시하는 기업들에서는 종업원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굳이 회사에 몸만 가지고 8시간 일할 필요는 없으니 1시간을 집에서 일하던 회사에서 일하던 몸과 마음과 정신이 분절되지 않고 온전하게 통합된 자신을 가지고 와서 일하라는 요구이다. 또한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을 이원론적이나 제로섬으로 파악하지 말고 회사의 플랫폼을 이용해서 자신이 어느 정도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이라고 주문한다. 자신의 성장을 앞세우지만 그 결과로 회사의 플랫폼도 성장시킬 수 있는지도 고려해보라고 주문한다. 워라벨과 같은 것 요구하지 말고 하루 8시간 중 대여섯 시간은 신나게 놀다가 지치면 1-2시간은 온전한 자신을 가지고 와서 일도 해보라고 주문하는 회사도 있다. 제조업에서는 요원한 이야기지만 인지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일반기업에서의 새로운 주문이다.
세 석공의 이야기
세 명의 석공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궁금해서 각 석공들에게 물어본다.
“왜 그렇게 열심히들 일하고 계세요.”
첫째 석공 왈,
“일당 5만 원짜리 일을 하고 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해요.”
둘째 석공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왔어요.”
“틈만 나면 도망갈 겁니다.”
셋째 석공은 앞의 두 석공과 달리 환한 웃음을 지어가며 정말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석공의 대답은 다르다.
“일개 석공이어서 잘은 모르지만 성당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당이 성공적으로 복원되어서 믿음을 잃었던 사람들이 성당에 와서 믿음을 찾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내가 하는 일이 일개 석공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석공은 생계형 석공이다.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고 주장하는 둘째 석공은 현실이라는 타성의 감옥에 갇혀서 열심히 언덕으로 돌을 굴려가는 시지포스 석공이다.
세 명의 석공 중 세 번째의 석공만이 자신의 일의 의미를 찾아서 업으로 일하는 온전한 석공이다.
설사 억이 넘는 월급을 받는다하더라고 세번째 석공처럼 일하지 못한다면 일억짜리 일개 월급장이에 불과할 뿐이다. 둘째 석공은 생계문제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런지는 모르지만 현실에 순응하고 타성적으로 적응한 상태로 일하는 현실감옥에 갇혀 매일매일이 허구적 욕망으로 세워진 언덕으로 돌굴리는 일에 동원된 시지포스 형 직장인이다.
초뷰카시대 신자유주의의 피라미드 형 기업문화를 해체하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는 세번째 석공과 같은 석공들이 제대로 성장을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숫자가 변곡점(Critical Mass) 형성할 정도로 커질 수 있게 조직문화의 판을 다시 짜주는 것이 기업문화 설계에서 고민해야 할 핵심주제다.
세번째 석공은 설사 회사가 성당을 복원하는 장소라는 미션을 설정해주지 않아도 다른 두 석공보다는 더 전문가로 성장할 개연성이 높다. 이들의 경력의 목적함수는 자신에게 할당된 목표가 자신의 목적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로 정렬되어 레이저 빔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목적을 상실한 산성화된 상태라도 자신의 고유한 목적함수를 세워서 조용하게 급진적 거북이 상태로 목표를 넘어서 목적을 실현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경력을 달성한다. 자신의 목적함수를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조용히 실현할 수 있다면 산성화된 회사의 분위기는 이들이 경력을 쌓는데 무주공산인 셈이다.
회사가 자신들의 토양이 산성화되어 있음을 각성해서 성당을 복원하는 일터라는 더 큰 공유된 목적함수를 제시하고 이 목적함수가 담긴 문화적 플랫폼을 제공해줄 때 회사에는 이런 목적함수를 공유한 개인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목적을 위해 제심합력하는 협업으로 회사와 종업원이 모두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성장체험을 달성한다.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가 주창하는대로 기업도 존재 목적을 가지고 선교사로서 일하는 회사와 선교사로 일하는 종업원이 많은 회사만이 시대의 돌파구를 마련해 지속가능성을 달성한다.
생계형, 시지포스형, 온전형 인간은 회사를 넘어서 우리의 삶의 태도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대한민국의 수준은 열심히만 일한다면 생계의 문제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생계의 걱정에서 벗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의 타성이라는 감옥속에서 현실이 시키는 강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시지포스 인간으로 머물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한번 밖에는 기회가 없는 신성한 삶이라는 것을 각성하고 이를 소중히 여겨 삶의 목적을 세우고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삶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삶을 미션으로 생각하고 선교사의 삶을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포함해 생계와 타성을 넘어서는 온전한 삶을 사는 사람들만 의미 있고 번성하는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존재목적을 상실하고 모든 것을 효율성의 제도로 승부하는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만들어 운영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영구적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들이 자유와 선택을 이야기하지만 내용을 띁어보면 모두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허구적 선택을 광고하는 자유일 뿐이다. 이들 신자유주의자들이 외치는 자유는 더 많은 것을 더 효율적으로 경쟁적으로 생산하면 미래의 고통과 공포를 잊고 지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메시지로 지속적으로 그루밍 시킨다면 신자유주의는 전형적 가스라이팅이다.
신자유주의 동력을 장착한 자본주의는 엄청난 생산력과 효율성으로 인간의 고통을 통제하고 실제로 온전한 자유를 막아가며 우리에게 시지포스 인간으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지 말고, 회사에 따지지 말고 순응해가며, 더 열심히 시지포스처럼 일해서 휴가를 취득할 자유를 자유로 강요하고 있다. 이상은 잊고 현실과 제도와 법에 순응하다보면 가공된 현실의 감옥 속에도 선택지가 많으니 이것을 즐기는 허구적 자유를 선택하라고 가르친다. 이상을 잊고 현실에 순응하라고 가르치는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가스라이팅 시킨 것이다.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해방은 이런 신자유주의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 자신이 현실의 타성과 효율성, 고양된 가짜 욕구의 노예상태에 갇혀 살고 있음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한다. 타성은 가짜 욕구를 마치 현실적인 것처럼 과장해서 목적을 마비시킨다. 하지만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존재목적을 각성해 목적으로 자신을 임파워먼트 시키고 목적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목적이 명하는 미션을 수행해 자신을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암울한 갈등과 현실을 이길 수 있는 희망을 체험하려면 각 제도와 주체의 존재목적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임파워먼트시키는 각성이 시급하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이상이 현실에 의해 제압되어 모든 국민들이 시지포스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전형적 가스라이팅이다. 이런 가스라이팅을 주체적으로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파국으로 가는 설국열차인 셈이다.
우리는 소위 대한민국을 이끈다는 리더들에게 기업, 국가, 사회, 교회, 학교, 정치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의 유사자유를 앞세운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존재목적으로 해방된 온전한 자유의 의미를 복원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들에게 각자 삶의 영역에서 목적을 지향해가며 모두가 주인으로 자신 삶을 즐길 수 있는 운동장을 설계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