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xture #GPT

본인은 경영대학에서 조직행동론, 리더십, 변화혁신, 조직설계 등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학기까지 학생들에게 시험을 위해서 책을 가지고 와서 참고해가며 시험을 볼 수도 있고, Google Search도 할 수 있고, 대신 시험문제는 분량을 주고 타이핑하도록 하는 오픈 북 방식을 사용했다. 타이핑을 해야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펜을 들고 글씨를 써본적이 없어서 실제 객관식 문제가 아니면 학생들의 필적을 읽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도 시험을 채점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학생이 수준 높은 답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교재나 구글 등을 통해 주제의 최근 전개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주어진 시간 안에 이런 주제들과 주제들을 크로스 시켜가며 자신만의 지평을 제시하는 직조(Contexture) 능력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나름 구글의 최신 정보를 참조해서 반영할 수 있는 첨단의 학습평가이라고 자부했었는데 이번 겨울 Open AI사에서 Chat GPT 공개는 이런 평가 방식을 전부 쓸모 없게 만들었다.

왜 그럴까?

내가 학생들을 평가할 때 쓰는 파라메터는 세 가지였다. 수업시간에 중요하게 업데이트한 주제를 변수로 도입해서 현재 첨단연구 수준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하고 있는지, 이렇게 제시된 변수들의 매트릭스를 만들어 변수와 변수를 역어 맥락이 있는 매개변수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매개변수로 만들어낸 맥락을 자신이 주장하는 결론으로 연결시키는지였다. 배점도 수업에서 이야기한 새로운 주제를 놓지지 않고 설명하고 이해하고 제시하고 있는지는 20%, 변수를 교차시켜 의미 있는 매개변수로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50%, 매개변수를 미래의 지평을 뚫을 수 있는 결과변수로 연결해 논의를 종결시킬 수 있는지가 30% 정도 였다.

이 평가방식에 나름 자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구글서치를 아무리 잘해서 20%를 완벽하게 대답해도 중요한 변수와 변수를 엮어서 새로운 매개변수를 만들어내고 이 매개변수를 결론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평소 이런 높은 차원에서 충분히 생각을 많이 한 학생들만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평가방법은 공부를 제대로 한 학생과 인지적 수업만 들은 학생을 구별할 수 있는 변별력이 있었다.

하지만 Chat GPT를 실제로 사용해서 내 시험문제에 대한 답안을 작성해보니 그동안 구글이 해내지 못한 변수와 변수를 엮어서 맥락을 만들어내고 이것에 대한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내가 보기에도 완벽할 정도로 수행했다. 최근에 와튼스쿨에서 Chat GPT로 작성한 답안을 통해서 MBA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기사를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대학이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학생들을 Chat GPT를 사용하지 못하게 교실에 불모로 잡아 암기식 객관식 문제만을 시험보게 한다면 원시시대로 토굴을 파고 회귀하는 대학이 될 것이다.

Chat GTP가 이런 상태라면 조만간 교수와 대학이 설 자리가 없다. 대학의 커리큘럼에 파괴적 혁신이 없다면 대학과 교수직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수업시간에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나를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나를 이해시켜보라는 주문을 자주하는데 실제 Chat GPT에 이런 주문을 넣어보니 설명을 바꿔가며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Chat GPT는 시험 뿐 아니라 수업과정도 대체할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대학도 존재이유에 질문을 받겠지만 이런 상태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검색으로 광고를 해서 돈을 벌던 구글 비즈니스 모형도 더 이상 설자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존재하는 모든 대상과 이들이 하는 일에 존재이유의 정당성 질문을 던진다. 존재이유가 있다는 것은 자신이 대체불가능한 존재임을 소구하는 것이다. 존재이유는 대체불가능성을 소구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대답을 얻는 유일무이한 질문이다. 초뷰카시대에는 한 순간 존재이유에 대한 질문을 놓치면 자신이 무슨 이유 때문에 대체되었는지도 모르고 세상에서 퇴출된다.

과거의 기술적 경쟁우위를 점한 성공이 아무리 뛰어났어도 지금 존재이유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은 더 좋은 솔루션을 낼 수 있는 대체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더 나은 대안적 솔루션이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은 세상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뷰카시대 기술적 경쟁우위를 가지고 초격차를 시도해가며 차별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은 Open AI나 로봇과 경쟁해서 이기겠다는 무모한 발상이다. 초뷰카시대를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방식은 이런 경쟁우위를 상수로 받아들이고 이들이 제시하는 현실적 지평을 딛고 자신이 어떤 존재이유를 증명해낼 수 있는 미래지평의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는지에 따라 기업과 리더의 명운이 달려있다.

나의 경우도 당장 시작되는 봄학기를 위해 학습과 평가하는 방법을 혁신하지 않으면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군더더기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몇 해 전부터 정보화시대 전문성으로 남을 가르치는 첨단의 직업이었던 교수가 구글과 경쟁해가며 차츰 3D직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3D 직종으로 전락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Chat GPT가 이끄는 전문성의 민주화는 다른 전문 직업군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어 Chat GPT의 등장은 컨설팅과 코칭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몇번의 대화를 통해 제대로 된 맥락화 과정을 거쳤을 때 Chat GPT는 예민한 개인적 코칭질문에도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답을 제시했다. 아무리 뛰어난 코치들도 지금까지 해왔던 코칭 수준에 머문다면 코칭은 자신을 가르치는 도구 이상을 넘어 다른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코칭해주는 직업으로서는 존재이유가 없는 시대에 도달한 것이다.

나름대로 전문성을 구축했다고 믿고 있던 본인의 영역인 변화혁신에 대해 그간 고민해왔던 민감한 컨설팅을 해본 결과 이에 대한 답변은 더 경의적이었다. 당장 나같은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아도 누구든지 이런 답변으로 컨설팅 회사를 차려도 될 수준이다. Chat GPT는 전문성을 완전히 민주화 시키고 있다.

이런 지평의 상승을 염두에 두었을 때 지금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과연 존재이유가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어제까지는 "예"였는지 모르지만 GPT를 염두에 두고 오늘 다시 질문한다면 "예"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은 불투명하다. 예라는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조만간 존재이유를 상실할 것이다. AI나 로봇과 경쟁해가며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유사일을 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초뷰카 세상은 더 이상 경쟁우위 다툼을 위해 AI나 로롯과 싸울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이들과 끝까지 경쟁한다는 것은 스스로 레드오션의 피터지는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오만이다. 인간이 더는 기술적 경쟁우위를 가지고 차별화를 논할 수 없는 세상이다. 경쟁우위는 AI와 로봇에게 외주로 넘기고 인간은 상수화된 경쟁우위를 통해 어떤 존재우위를 실현할 것인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존재우위에 대한 성찰을 놓친다면 차별화는 고사하고 디지털 노예로 사는 삶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