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6:48
[N.Learning] 대학의 미래 공부의 뜻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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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미래
공부의 뜻
Chat GPT, AI, 머신러닝, 로봇 기술이 상용화 됨에 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패러다임을 다시 짜야한다는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어제 있었던 학교의 신년 전체 교수회의의 주제도 이런 변화의 물결에 맞춰 대학을 학생들의 취업이 아닌 학생과 교수의 창업생태계로 전환킬 수 있는지였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교육, 연구, 봉사를 책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기술의 진보로 교육, 연구 기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셈이다.
대학이 독점하던 고등 교육 기능면에서는 기존의 인지적 지식에 관한 교육은 이미 구글이 모든 정보를 수집해 공짜로 나눠주는 지식의 민주화를 통해 설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대학을 통해서만 이런 고급지식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서 해방된 것이다. 또한 구글은 유튜브를 통해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찾아가서 수강하는 개별 맞춤형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강의실을 옮겨다니며 정해진 내용만 듣게 하는 대학이 독점하던 교육의 방식은 수만개의 개별맞춤형 강의실을 제공하는 유튜브에게 빼앗겼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노벨상 급의 원천 연구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연구자들의 연구는 기존에 존재하는 연구와 연구의 빈 공간을 찾아서 연결해주는 연구가 90% 이상이었는데 Chat GPT가 나와서 이런 연구를 대체해버렸다. 실제로 미국의 유수 대학에서는 Impact Factor가 높은 SCI SSCI에 출간하는 논문의 숫자가 아니라 이런 급의 아니라도 자신의 연구가 다른 연구자들이 출간한 책이나 논문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인용되는지에 대한 인용 빈돗수와 인용된 학자들의 질적 수준에 의해서 평가하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chat GPT가 발매되어 학부생도 교수들이 쓰는 연구논문을 소비하고 써낼 수 있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원천기술이나 원천에 대한 연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연구자로서의 교수의 독보적 자리도 의미가 없다.
한 때는 대학을 교육 중심인지 연구 중심인지를 나눠서 연구중심 대학을 좋은 대학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런 논쟁이 더는 무의미한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대학다운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해서 학생을 통해 실용적 미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학부 학생도 자신이 풀려는 문제에 따라 전문 연구자 수준의 연구결과를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유수 대학 사이의 경쟁은 교육과 연구를 통합하고 응용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대학이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실용적 프로토타입을 산출할 수 있는 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명운이 달려 있다. 대학의 평가기준도 학생들이 교육과 연구를 통합하고 업데이트해 자신과 주변에 미래지향적이고 실용적인 가치에 기여할 정도의 프로토타입을 계발할 수 있는지다. 교육, 연구, 봉사라는 분화된 전문성을 해체하고 이것을 온전하게 통합해서 학생들을 통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근력을 훈련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학문적 전문성이나 분업이 아니라 이들을 통합해서 만들어낸 Wholesomeness와 이 온전성으로 훈련받은 학생들을 통해 실제로 얼마나 의미있는 미래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학생은 교육만 받고, 연구는 교수만 하고, 봉사는 그냥 홈페이지를 장식하는 문구로 삼는 대학이 아니라 학생을 통해 교육, 연구, 봉사가 통합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지의 문제다. 학생이 주체이고 교수는 이런 학생들을 위한 퍼실리테이터이자 세르파일 뿐이다.
디지털 혁명이 추동하는 시대의 지평을 열고 있는 미국의 세 대학은 아마도 MIT 공대, 스탠포드, 미네르바 대학으로 추정된다. 이 대학들이 디지털 혁명시대 연구, 교육, 봉사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접근하는지를 추척해볼 필요가 있다.
MIT 공대는 로봇, AI, ML, 나노기술 등에서 수많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스텐포드는 벤처기업의 본향이고, 새롭게 등장한 미네르비 대학은 미래를 준비하는 산실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이 연구, 교육, 봉사를 통합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MIT는 Micro Learning 방식을 채용하고 있고, 스탠포드는 Practical Learning 방식을, 미네르바는 Nomadic Learning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각 대학은 새로운 학습을 위한 자신들만의 학습 공동체를 운용하고 있다. MIT는 보스톤 지역의 수많은 기술지주 회사와 랩 생태계가 학습 공동체이고, 스탠포드는 실리콘 벨리라는 창업생태계가 학습공동체다. 미네르바는 현장의 문제를 찾아서 나라와 나라를 옮겨 다녀가며 문제해결력을 축적한다. 미네르바에게는 현안을 가진 지구가 학습공동체이다.
MIT의 학습을 추동하는 마이크로 러닝은 원천기술을 더 짧게 나노단위로 미분해서 쪼개고 이것을 다시 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원천기술의 모듈을 개발해서 미래를 위한 기술특허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창업도 실제 회사를 설립하기보다는 기술창업에 방점을 둔다. 일례로 모더나를 창업한 로버트 랭거 교수는 전공 분야인 나노기술을 이용해 백신 업체인 모더나를 세웠지만 자신의 역할은 CTO다. 나노 원천기술로 30개 이상의 회사를 기술창업했다. 창업한 기업의 가치는 30조 원이 훌쩍 넘는다.
스탠포드는 인터넷과 디지털 환경으로 세상의 지평이 바뀌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오픈 기술을 활용해 여기서 생기는 고통을 해결해주는 Practical Learning에서 차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실용적 학습을 통해 문제를 실질적이고 원인의 수준에서 해결해주는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내는 벤처 회사를 설립하여 독립시키는 방식이다. 미네르바는 세계의 도시를 옮겨다녀가며 현장에 실제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축적하는 방식인 Nomadic Learning으로 대학의 차별적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 세 학교가 공유하고 있는 학습의 원리는 협업, 실험, 미래이다. MIT가 학과단위로 운영하든, 스탠포트가 좀 더 큰 학제단위로 운영하던, 미네르바가 나라단위로 운영하던 핵심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성을 풀링(Pooling)하는 협업(Collaboration) 방식이다. 둘째는, 정해진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답은 항상 일시적 가설 형태로 존재하는 한시적 진실이라고 규정한다. 이 한시적 진실을 항상 실험실에서 실험과 데이터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하는 학습태도를 가지고 있다. 진실의 진보는 누군가가 가설형태의 일시적 진실을 만들고, 이 진실도 실험을 통해 누군가가 더 나은 가설을 제시하면 다시 대체되는 공진화 과정을 거친다고 본다. 이 모든 과정을 추동하는 것이 실험이다. 세 대학 모두는 자신들을 이런 일시적 진실을 보유하는 실험실(Lab)로 규정하고 운영한다. 누군가 더 창의적 가설을 진실로 주장하는 사람이 나와서 다시 실험을 통해 증명하면 다른 더 나은 진실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기까지는 잠정적 진실을 보유한 사람이다. 마지막이 이런 실험과 협업이 "미래의 인류가치"에 기여하는지를 의사결정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연구, 교육, 봉사 중 미래의 가치를 추동하는 것은 봉사에 대한 책무이고 이 책무는 철학과 인문에 대한 근력으로 만들어진다고 본다.
AI의 머신러닝 기능이 강화되고 이 기능들이 로봇과 결합되면 사실 과거에 성공한 모든 학습 모형과 과거를 실현한 성공은 이들이 독점할 것이다. 과거의 성공을 통해서는 이들과 경쟁할 수 없는 인간이 우수성을 입증할 유일한 통로는 이들 기술을 이용해서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지의 역량만 남는다.
우리나라 대학이 이런 Practical Learning, Micro Learning, Nomadic Learning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탈학습해서 교수가 아닌 학생들을 주인으로 삼아 연구, 교육, 봉사가 통합된 대학의 미래 정체성을 다시 세울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인류의 미래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세운 원리인 기술과 인문의 직조에 얼마나 성공하는지에 달려있는 것같다. 기술과 인문을 직조해서 새로운 미래의 지평을 만드는 일에 봉사할 수 있는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실험실이자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대학의 새로운 책무다.
공부는 한자로 工夫로 쓴다. 장인 공工 에 지아비 부夫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사장 인부"쯤으로 읽히지만 속 뜻은 심오하다. 장인 공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의미이거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수직적 작업을 의미한다. 지아비 부는 이런 작업에 근력(Discipline)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Discipline이란 말은 학문이라는 뜻도 있지만 더 본질적 의미는 제발로 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근력을 뜻한다. 학습 (學習)이라는 의미도 배운 것을 자신의 몸에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체질화 시킨다는 뜻이다. 배운 것을 습관화해 자신의 근력을 만드는 문제다. 결국 공부하고 학습한다는 것은 현재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접속시켜 더 의미 있는 지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력에 대한 훈련이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성인들도 공부의 근력을 만들어내는 평생학습의 책무가 부가된 셈이다. 공부 근력을 위해서는 상승하고 있는 기술의 문제를 practical, micro, nomadic learning으로 업스킬링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것을 날줄로 삼아 미래 시간의 씨줄로 다시 직조해 자신과 세상에 의미있는 현재의 지평을 만들어낼 수 있지를 검증하는 실험실로 자신을 운용할 것이 요구된다. 기술적 지평이라는 날줄과 자신의 미래라는 씨줄을 결합해서 의미있는 현재를 만들 수 있는 실험이 공부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공진화하고 상승해가기 때문에 이런 상승하는 지평의 수준에 맞춰 자신을 지속적으로 죽는 순간까지 공진화시킬 수 있는 실험실로 운용해 기술적이고 철학적 근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공부의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