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08
[N.Learning] 한 테니스 선수의 기도 이야기 "왜 저인가요 (Why Me)?"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86  
한 테니스 선수의 기도 이야기
"왜 저인가요 (Why Me)?"
기도는 종교를 떠나서 보편적으로 신에게 삶의 지혜에 대해 코칭을 구하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고통을 벗어나서 건강, 재산, 행복을 달라고 기도하지만 정통 종교의 신이라면 이런 기도에 응답할리가 없다. 정통 종교의 신이라면 지혜를 구하는 질문에 답할 뿐이지 결과물까지 인의적으로 만들어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스푼피딩(Spoon Feeding)하지 않는다. 열심히 믿으면 기도한 모든 것이 다 이뤄진다는 맹목적 목적론은 사랑하는 추종자들을 자신의 발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불구 어린이로 만든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신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복권을 당첨하게 만들어 온전한 삶을 황폐화 시킬리는 없다.
정통 종교의 신은 지혜를 구하는 기도에 응답하고 절실하게 기도하면 같은 기도제목을 가진 사람들을 동원해 더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도록 도와줄 뿐이다. 제대로 된 신은 개인의 삶에 시시콜콜 개입해 복권 당첨금을 나눠주지 않는다.
지혜로운 기도제목으로 기도 응답을 얻었다면 이 응답을 씨앗으로 삶 속에서 심어서 결과물을 내는 것은 기도한 사람의 책무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만 하면 모든 결과물을 신이 채워준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통신앙이라기보다는 기복신앙이거나 사이비 종교다.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는 유명 무당도 요즈음에는 이런 목적론적 기복신앙으로 장사하지는 않는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 기복신앙 비슷하게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뿐이다. 사이비 교주가 이런 영혼구원 장사를 통해 신도들에게 갈취하는 것도 재산, 영혼, 탐욕이다. 정통교회가 영혼구원을 빌미로 신도들에게 헌금과 십일조를 강요하고 있다면 사이비 교주의 흉네를 내는 것이다.
복권당첨을 요청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기도로 지혜를 구하고 여기서 얻은 지혜를 자신의 삶의 씨앗으로 뿌려 삶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킨 사례는 많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면 고 아서 애쉬라는 미국의 테니스 선수의 기도다.
아서 애쉬(Arthur Ash Jr)는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테니스 선수다. 애쉬가 태어난 버어지니아 주는 남북전쟁시 남부군의 수도였다. "흑인은 테니스 선수가 될 수 없다"는 버지니아 주법이 있었다. 테니스는 백인만이 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인종차별을 법으로 명시한 것이다.
애쉬는 이런 인종에 대한 편견 때문에 테니스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버지니아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UCLA 대학에 진학해 선수로 활약한다. 졸업 후 테니스를 지속해 US Open, 호주 오픈에 이어 1975년 윔블턴에서 그랜슬램을 달성한다. 애쉬는 백인만 테니스를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미신에 불과했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깼다.
1975년 윔블턴 우승을 기점으로 은퇴하고 사회적 편견을 깨는 다양한 활동에서 인권 운동가로 나섰다. 이 당시 심장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1988년 심장수술 도중 수혈을 받다가 에이즈에 감염된다. 이 당시만 해도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극심했고 치료제가 없어서 감염은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애쉬는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에이즈 환자의 치료를 돕는 재단을 설립해 1993년 죽는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에이즈 퇴치 운동에 나선다.
이 당시 주변 사람들은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애쉬에게 재단 일로 시간을 쓰기보다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충고했지만 애쉬의 생각은 달랐다.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애쉬에게 자신에게 준 고통을 준 에이즈 환자를 미워하고 나아가 이런 병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애쉬는 이 기자에게 자신이 고뇌해왔던 그간의 기도제목을 고백한다.
"왜 저인가요 (Why Me)?"라는 기도제목이다.
애쉬는 1975년 자신이 윔블턴에서 우승했을 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축복을 주셨나요?"라고 묻지 않았듯이, 지금 이 고통에 대해 "왜 나인가요? 물을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대신 지금은 기도제목을 바꿔 "얼마 남지 않은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위해 기도했다고 고백한다. 간절한 기도에 대해 애쉬는 다음과 같은 응답을 받았다고 말한다.
To Achieve Greatness,
Start where you are
Use what you have
Do what you can
네 몸의 상태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하려면
(남을 탓하지 말고) 지금 네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네가 지금 가진 것만으로
네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라
모든 사람들이 주변을 정리하고 가족과 지내라는 세속적 충고를 극복하고 아서 애쉬는 기도응답을 실현하기 위해 에이즈로 고통받는 자기와 같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 씨를 뿌리는 책무를 수행했다.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기부해 재단을 설립했고 이 재단으로 전환된 애이즈 환자의 고통을 극복하는 책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행되었다. 애쉬 사망후 재단에 충분한 기금이 축적되어 부시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방문해 전달했다. 실제로 이 기금을 통해 아프리카 수만명의 에이즈 환자들이 살려졌다. 애쉬가 기도제목을 바꿔 얻은 응답으로 씨앗을 뿌리지 않고 기도만 했다면 이처럼 기도가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해 실현되는 기적은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다.
애쉬가 기도로 지혜로운 응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가족에 대한 기복을 넘어 의로움과 자신과 같은 고통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이라는 맥락에서 하나님께 질문했고 이에 대해 응답을 받은 것이다. 솔로몬이 기도를 통해 지혜의 대왕으로 등극할 수 있던 것도 자신의 기복을 초월한 공의와 아픈 사람에 대한 긍휼이라는 맥락을 놓치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애쉬가 세상을 떠난지 근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편견으로 가득했던 세상에서 고난을 감내하기 위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는 지에 대해 애쉬가 물을 수 없었던 유예질문을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물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애쉬가 겪은 고통에서 면제받은 우리들도 지금은 천국에 있을 애쉬를 대신해서 "왜 저인가요?"를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 특히 부모의 유전자 복권과 부모의 경제력으로 선택된 삶을 향유해온 사람들은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하나님 왜 나에게만 이런 행운을 주시는 건가요?"
올 해 한 국제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부의 불평등, 자살율, 우울증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에서도 혜택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애쉬의 유예질문>에서 스스로를 면제시킨다면 노블리스 오블리지는 고사하고 국가의 토양이 지속적으로 산성화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대한민국 사회를 지탱해주는 유대가 통채로 붕괴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