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21 11:11
[N.Learning] 우리는 자신을 신뢰할 수 있을까?
 글쓴이 : 윤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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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자신을 신뢰할 수 있을까?
자기긍휼과 자기신뢰
신뢰란 상처받을 개연성(Vulnerability)에 대한 허용 범위를 의미한다. 합리주의자이자 정치사회학의 아버지인 독일의 칼 도이취 Karl Deutsch는 상처 받을 개연성을 측정하기 위해서 간단한 상상적 실험을 제안했다. 갑과 을 사이에 신뢰의 정도를 숫자로 측정하기 위해 상대에게 못 받을 것을 각오하고 금전적으로 얼마까지 빌려줄 수 있는지를 신뢰의 척도로 제시했다.
갑과 을이 서로 천만원의 범위에서 못 받을 것을 각오하고 서로 융통을 하고 있다면 둘 사이 신뢰잔고는 2 천 만원이다. 측정을 위해서 상상적 실험을 한 것이지만 신뢰에 대한 이론적 정의는 못 받을(상처 받을) 상황을 용기 있게 직면할 수 있는 "상처 받을 수 있는 개연성(Vulnerability)"에 대한 범위를 의미한다.
조직에서도 모든 구성원이 상대 때문에 혹은 회사 때문에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매 거래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면 신뢰는 없는 조직이다. 이런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속을 하고 어기면 벌을 주게 하는 제도적 신뢰가 성행하지만 세상이 변화하면 이런 제도적 신뢰로 모든 것을 담보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생긴다. 이런 불확실성을 해결해주는 것은 서로가 상처 받을 개연성의 범위를 인정하고 이를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인간으로서의 신뢰가 본질이 된다. 서로 간에 신뢰가 있다면 제도적 신뢰에서 요구하는 담보 비용 즉 거래비용 없이도 거래가 물 흐르듯 성사된다. 더 생산적 일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엄청난 거래비용 절감이 이뤄진다.
상대 때문에 상처 받을 범위가 숫자로 환산이 안되는 경우를 무한 신뢰라고 부를 것이다. 특정한 범위를 정하고 그 범위에서 행해지는 신뢰를 조건적 신뢰라고 부른다. 무한신뢰를 하고 싶어도 각자가 가진 자원의 범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간 간 모든 신뢰는 조건적 신뢰다.
이와 같은 신뢰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용되지만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자신이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지를 물어보면 어느 정도 가늠이 선다. 자신도 자신을 못 믿는다면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설 수 없다. 자신에 대한 신뢰는 어떤 경로로 생기는 것일까?
우리는 부모로부터 전수 받은 유전자 복권을 개발해 인적자본(Human Capital)을 만들고 인적자본을 시장에 팔아 가며 살아간다. 유전자 복권은 머리, 재능, 외모, 건강 등등 개발하면 돈으로 환산해 쓸 수 있는 인적자본의 종자돈인 셈이다. 개발하는데 드는 돈도 결국 부모가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재력을 가진 부모 밑에 태어나는 행운도 유전자 복권이다. 이런 복권을 받고 개발해서 승승장구하는 삶을 뽐내며 화려한 외적 삶을 지향하는 자아가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쓴 이고(Ego)다. 이런 유전자 복권이 거래되는 가치는 사회가 가진 고통의 문제를 얼마나 체계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즉, 전문성의 시장가에 의해 결정된다.
21세기 전까지는 이런 유전자 복권을 개발하면 평생 전문가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는 이런 유전자 복권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전문성의 범위가 축소되어 이런 전문성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치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AGI와 로봇 알고리즘이 발전해서 이런 전문성 자체를 민주화 시키는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머리 좋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전문가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 시대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유전자 복권을 개발해서 풀 수 없는 문제가 누적됨에 따라 고통을 받고 쓰러져 있는 현실적 자아가 성인아이다. 정도의 문제이지만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생긴 어둠의 자식 하나를 품고 산다. 성인아이는 컴플렉스(Complex)가 의인화 된 모습이다. 컴플랙스란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문제가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모습을 뜻한다.
유전자 복권으로 비교적 평탄하고 승승장구하는 화려한 삶을 살아온 이고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성인아이를 탓하고 비난한다. 성인아이는 이런 비난을 먹고 자란 자신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란 이고와 성인아이 사이의 거래에서 성립한다. 세상이 복잡해지면 성인아이도 이고를 안 믿고 이고는 문제가 안 풀릴 때마다 성인아이를 더 큰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어느 순간 둘 사이의 신뢰잔고가 제로가 된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고는 엑셀레이더를 밟지만 성인아이는 여기에 반대해 브레이크를 밟는다. 결국 유전자 복권을 받아서 비교적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던 이고도 기진맥진해지고 결국 화려하게 살았던 무대 중앙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을 산다.
자기신뢰(Self Trustfulness)란 이고와 성인아이를 중재하는 셀프(Self)가 어느 날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현재의 몸, 마음, 정신을 모두 동원해도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날 셀프는 주어진 모든 문제를 풀 수 없어서 생긴 고통이 인간 삶의 보편적 실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문제를 풀지 못해 상처 받을 개연성이 있는 삶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신처럼 취급했던 잘못된 가정에서 탈출한다. 인간임을 깨달은 셀프의 중개로 이고가 고통으로 쓰러져 있는 성인아이와 화해하고 서로 허그하고 성인아이는 이고를 이고는 성인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작업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신뢰가 복원된다. 이고와 성인아이 사이에 서로가 상처 받을 개연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허그하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고 서로를 삶의 국면의 파트너이자 주인으로 세우는 것이 자기긍휼(Self compassion)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잔고는 자기긍휼에 의해서 결정된다. 또한 이 자기긍휼에 의해서 조성되는 신뢰는 조건적 신뢰가 아니라 무한신뢰다.
자기긍휼로 자신에 대한 무한신뢰잔고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사람은 지속가능한 번성의 주체가 된다. 자기긍휼이 만들어낸 자기신뢰가 우리가 삶의 장면에서 구현해야 하는 네 가지 핵심자아를 만들어 내는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기긍휼을 통해 만든 자기신뢰잔고는 자긍심(Self Esteem), 내적자기통제(Internal Locus of Control), 자기효능감(Self Efficacy), 정서적 안정성(Emotional Stability or Low Neuroticism)을 산출하는 연료다. 이와 같은 선순환이 몇 차례 반복되면 어느 순간 자신은 실패가 불가능한 사람의 반열에 오른다.
자긍심이란 자신이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한 믿음이다. 내적 자기통제란 자기 자신이 삶의 일인칭 주체라는 믿음이다. 자기효능감은 어떤 일을 맡겨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고, 정서적 안정성은 삶에 어려운 부침이 생겨도 화나 공포 등에 휩싸여 정서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자기긍휼은 자신이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재능과 머리와 유전자 복권만을 편애해가며 자신의 자긍심을 높일 때 자긍심이 자만으로 탈주하는 것을 막아주는 브레이크다. 유전자 복권으로 물려 받은 것은 자신에 대한 거품이지 자기가 고유하게 만들어낸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적자기통제도 긍휼감의 브레이크가 없다면 세상에 통제할 수 없는 것도 모두 자기 탓으로 생각하게 하는 죄의식으로 탈주하게 만든다. 자기자신을 긍휼로 사랑하는 사람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별을 획득한다. 자기긍휼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일의 경계에서 시작해 자신을 일인칭 주인공으로 세우는 역할을 한다. 자기긍휼은 스펙 등을 무한정으로 부풀려가며 조건적 효능감을 높이려는 시도에 브레이크를 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그런 조건적 자신감을 만드는 스펙을 통해서 가 아니라 변화가 일상화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신에 대한 나침반을 가지고 있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또한 자기긍휼은 자신이 부정적 감정과 공포를 산출하는 편도체에 의해 종속되는 삶에서 자신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환기시킨다. 자기긍휼이 시도 때도 없이 격노에 휩싸이게 하는 편도체의 압제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모든 것의 시작은 아파서 쓰러져 있는 자신도 자신으로 사랑하고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자기긍휼이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믿음 즉 자기신뢰를 통해서다. 자기긍휼에 기반한 자신에 대한 신뢰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자긍심의 원천이다. 진정한 자긍심은 자신을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인칭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분별력이 있는 내적 자기통제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분별력이 있는 자신을 주체로 세울 수 있는 믿음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과정을 중시해가며 다양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게 해 과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근력을 만들어낸다. 이 근력에 대한 믿음이 자기효능감이다. 자기 효능감 근력으로 무장한 자신은 다윗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골리앗이라는 편도체와 조우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정서적 안정성을 유지해가며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 받는다. 이런 모든 과정은 아픈 자신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긍휼과 신뢰로 다시 환류된다.
결론적으로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의 시작은 "아픈 자신도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허그하고, 주인공으로 일으켜 세우는 자신에 대한 긍휼감이다. 지기긍휼은 자신에 대한 근원적 믿음(신뢰)을 산출해 자신에 대해 혁신과 근원적 변화를 행동으로 체험하게 하는 원천이다. 자기긍휼에 기반한 자신에 대한 믿음(신뢰)이 없다면 내면의 성인아이가 자라서 중요한 순간에 난동을 부린다. 자기긍휼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 머리, 외모, 건강은 자신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데 사용할 수 있는 보너스로 규정하고 겸손하게 사용한다. 자기긍휼이 산출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자신에 대한 파생적 믿음(자긍심, 효능감, 자기통제, 정서적 안정성)은 부풀려진 거품일 뿐이다. 이 거품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예고 없이 무너져 내린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다시 물어보자.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능과 머리와 외모와 건강 만을 편애하는 이기적 사랑을 넘어서서 아픈 자신도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삶의 주인공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가?
자신을 자기긍휼로 환대하고 사랑하지 않는 다면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자기긍휼만이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 복권이라는 거품과 포장이 무너졌을 때 절망과 아픔으로 쓰러진 자신을 일으켜 세워가며 스스로 훈련해 고유한 자신으로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알짜 근력이다. 자기긍휼이 없다면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믿음은 자기기만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런 혼란의 난국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긍휼 없는 사람들 중 유전자 복권을 타고 외적으로 화려하게 승승장구했던 사람들을 리더로 잘못 세운 탓이다. 자기긍휼이 있는 리더들만 자신의 주변에 자신보다 더 아파서 쓰러져 누워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이들은 자신에게 유전자 복권이 허용된 이유를 찾아서 자신의 머리와 재능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서 써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 차원의 국민적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