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7:25
[N.Learning] 온전한 소망의 등불로 빛나는 법 기름부음의 뜻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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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소망의 등불로 빛나는 법
기름부음의 뜻
깜깜한 밤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잔불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삼 요소는 기름, 심지, 불이다. 기름이 있다고 등잔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기름이 없는데 심지에 불을 붙인다고 온전한 등잔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는 기름부음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기름을 붙는 이유는 어둠을 밝히는 빛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온전하게 빛을 만들기 위해서는 등잔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등잔을 구성하는 기름, 심지, 불은 삶의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심지는 기름부음을 당하는 믿음을 가진 주체이고, 불은 이 주체가 등잔을 통해 밝히는 비전을, 기름은 불을 붙이기 위한 연료를 의미할 것이다.
성경은 빛을 만들어내는 등을 구성하는 삼요소 중 기름을 유난히 강조한다.
예수도 마태복음 25장 1-4 절에서 혼인잔치에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대한 비유에서 등불과 기름을 언급한다. 처녀 열명중 준비성이 부족한 다섯 처녀는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였지만,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그릇에 예비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고 비유한다. 신랑이 늦게 도착한 것이 사단이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당연히 예비로 기름을 다시 등에 채워서 신랑을 제대로 맞이 했다. 준비성이 부족했던 다섯 처녀들은 신랑이 늦게 나타날 것을 예비하지 못하고 있다 신랑이 늦게 나타나자 자신들이 가진 기름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허둥댄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을 등잔불로 세우기 위해 이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유연화 작업을 한다. 유연화 작업은 씨앗이 땅속에서 깨어나서 묘목을 분출하기 위해서 땅 속의 수분을 흡수해서 씨앗의 껍질을 녹여내어 씨앗 속에 있는 양분을 활성화 시키는 작업과 같다.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작업도 지니고 있는 단단한 껍질에 대한 유연화를 작업을 은유한다. 기름부음은 몸 속에 고체 상태로 정제된 에너지를 활성화해서 리더로 세워지기 위해서 물이 아니라 기름으로 유연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연화 작업에 동원되는 기름이 은유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반적 삶에서 심리학적 용어로 이야기하면 이 기름에 가장 가까운 대상은 몸의 혼에 비유되는 윤리적 정서다. 윤리적 정서는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일반적 정서와는 구별된다. 일반적 정서는 정제되지 않은 원유여서 기름으로 사용하기는 부적절하다. 윤리적 정서는 이런 몸에 사건의 충격이 가해져 일시적으로 발생한 감정이 아니라 고체 연료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농축된 정서다. 긍휼, 사랑, 고양, 감사, 겸손, 충만함 등이 윤리적 정서로 거론된다. 윤리적 정서는 일반정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 마디로 고농도로 정제되어 농축된 에너지다.
이런 윤리적 정서가 고도로 정제된 기름라면 어떤 주체가 목적에 대한 믿음을 깨달아 만들어 낸 것이 심지이다. 심지에 불이 붙여져 빛으로 전환된 것이 이 주체가 제시하는 비전이다. 마태복음에 나오듯 캄캄한 밤에 비유되는 삶에서 현명한 처녀들 처럼 등잔불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모자라는 처녀들 처럼 기름을 예비하지 못하고 어둠을 헤매며 사는 사람도 있다. 어둠 속에 신랑이 도착해도 등불이 없다면 신랑이 도착한 것도 알 방법이 없다.
퇴계 선생도 관직에서 물러난 후 선비라는 등잔불을 통해 세상을 밝히려는 운동을 통해 전개했다. 퇴계가 완성한 성리학에서 심지는 인의예지신이라는 목적으로 무장한 인간주체를 의미한다. 이 주체들이 사용했던 정제된 기름은 측은지심(사랑), 수오지심(부끄러음), 사양지심(겸양), 시비지심(지혜)였다. 기대승과 퇴계는 불을 붙이기 위해 심지가 먼저인지 기름이 먼저인지에 대한 논쟁을 벌였으나 선비라는 빛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 결국 닭이 먼저나 계란이 먼저냐를 따지는 허구적 논쟁일 뿐이다.
기독교에서는 다른 윤리적 정서도 기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럼에도 가장 강력하게 정제되고 농축된 기름으로 거론하는 정서는 사랑이다.
기독교의 기초를 세운 사도바울도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서 우리가 온전한 기독교인이 될 때 중요성을 깨달는 세 가지가 사랑, 믿음, 소망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설명한다.
온전한 등잔불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비춰주는 기독교인은 결국 사랑이라는 기름과, 믿음이라는 심지와, 이 등잔불이 밝힌 빛에 해당하는 소망이 모두 필요하다. 예수도 지적하고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등을 준비하는데 정작 사랑이라는 기름은 준비하지 못해 결국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성령의 기름으로 부어주신 사랑은 자신의 달란트에 대한 사랑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이웃이 가지고 있는 아픔도 자신의 것을 받아들여 품어주고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긍휼의 사랑이 사랑의 본질이다. 긍휼의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목적에 대한 탄탄한 믿음의 심지를 가지고 있어도 세상을 밝히는 소망의 등불이 될 수 없다.